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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터온에 발간될 신간 미명의 미리보기입니다.
*스가와라 코우시, 세미 에이타가 주인공인 논커플링 글입니다.
죽은 땅.
지구를 덮친 재난에 보호 구역처럼 캡슐도 없이 노출되어 손쓸 방법 없이 망가진 땅을 군 소속 파일럿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리 불렀다. 확실히 펼쳐진 광경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국의 수도를 울타리처럼 감싸 안고 있는 거대한 캡슐을 지나니 하늘도 땅도 온통 누런 먼지로 가득했다. 보호 구역의 안팎은 대기까지 철저하게 차단된 상태였으니 외곽 지역의 주민이 아니라면 바깥의 상태를 전혀 모를 정도로 땅의 상태는 극과 극이었다. 나무도 풀도 없다. 푸른색이라곤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환경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건가.
저곳에 살고 있을 사람들을 동정으로 조롱하던 파일럿 몇이 키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자코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생명이 살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흙바닥은 가물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쩍쩍 갈라졌다. 그 틈새로 자란 잡초만 몇 무더기 듬성듬성 있을 뿐 저런 곳에 작물이 자랄 수 있을 리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는다. 물론 공중을 지나고 있었으니 육안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적어도 레이더에 잡히는 생체 신호는 없었다.
출발 전부터 정해진 항로를 따라 조금 더 이동하니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늘의 목적지였다. 금세 스크린에 착지 명령이 떨어졌다. 마을 안에는 거대한 전투용 모빌 슈트를 수용할 만한 시설이 없었으므로, 근처 임시로 지어놓은 막사를 제국군의 주둔지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레버를 당겼다. 육중한 기체가 서서히 하강했다.
육지에 가까워올수록 누런 흙먼지가 회오리처럼 휘날렸다. 근처에 이 광경을 구경하러 온 아이들의 무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양산형 2번기로 편성된 총 두 개의 부대가 대열을 맞춰 착지했다. 폭풍 같은 바람이 분다. 시끄러운 소음이 잦아들고 나서 나는 모빌 슈트의 가동을 멈추고 콕피트를 열었다.
이름 모를 작은 마을의 첫 인상은 ‘숨 막힌다’였다. 과장이 아니고, 그래봤자 같은 지구인데 대기의 질이 얼마나 차이가 나겠냐며 우습게 알았다간 호흡기 질환을 주렁주렁 달고 귀환할 정도였다. 병원 신세를 지기는 싫었으므로―그럴 리도 없지만― 나는 일부러 헬멧을 벗지 않았다.
입고 있던 파일럿 슈트에 흙먼지가 내려앉는다. 바닥에 발을 딛고 서서 주위를 둘러봤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제국군의 부대를 바라보고 있는 어린아이들이었다. 그 뒤편으로 허름한 마을의 입구가 보인다. 그래도 마을이라고 이런 황무지 같은 땅 위에 나무가 몇 그루 자라있었다. 줄기가 가느다랗고 뿌리가 깊지 않아, 모래 폭풍이라도 불면 금세 날아가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처음 방문한 장소치고 시시한 감상은 딱 마을의 모양과 닮았다. 그곳은 아주 작고, 메마르고, 황량했다.
* * *
이어지는 글이 아닙니다.
* * *
고개만 까딱한 그가 나를 지나쳤다. 자박자박 모래바닥을 걷더니 밭을 보고 자리에 쪼그려 앉는다. 흐트러진 흙더미를 다독이다가 뭔가 고민을 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나를 돌아본다.
“나는 세미 에이타예요.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스가와라.”
“그 휘장, 꽤 높은 직위인 거죠?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대단하네.”
그 말에는 섣부르게 대답하지 못했다. 곤란한 표정으로 웃기만 했더니 다행히 그는 더 묻지 않았다.
“혹시 시간 괜찮으면 좀 도와줄래요? 흙이 마르기 시작해서, 우물을 길어서 뿌려야 하는데 혼자서는 아무래도 오래 걸려서. 아, 곤란하다면 거절해도 괜찮아요.”
그는 좀 뻔뻔한 구석이 있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이 제국군에 호의를 가질 리 만무하건만 그는 제국군의 제복을 입고 있는 나를 향해 호쾌하게 웃곤 했다. 대답도 듣지 않고 근처에 있던 우물로 향한다. 나는 그의 등을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느리게 그의 곁으로 걸어갔다.
“나는 이제 스물세 살이에요. 스가와라 씨는?”
아무래도 그는 나와 말을 트길 원하는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저도.”
“와, 스물세 살에 대령? 중령인가? 가능한 일이에요?”
“딱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그런 건가, 아버지가 엄청나게 높은 사람이라던가.”
호들갑을 떨며 조잘대는 게 딱히 싫지 않아 나는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가 물을 길어 올리면 나는 우물 옆에 쌓아둔 양동이에 나눠 담고 밭까지 배달했다. 양동이를 다 채우면 밭에 골고루 물을 뿌리고, 물이 모자라면 다시 우물가에서 물을 채웠다.
이런 일을 혼자 하는 걸까. 문득 궁금해져서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마른 손바닥에 굳은살이 여기저기 박였다. 고된 생활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스물세 살. 아직 어린 나이다. 캡슐 안의 사람이라면 그 나이 대에는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한다거나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 지식을 쌓거나,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러 놀러 다니는 게 일반적이었다. 같은 지구에 살고 있어도 캡슐 안쪽과 바깥쪽의 세계는 너무도 다르다. 심심풀이로 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까닭을 이론적으로 알고 있어도,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아무래도 어깨가 무겁다.
“당신은 내가 밉지 않아요?”
“스가와라 씨를 미워해서 어디다 쓰려고요.”
“제국군이니까.”
“그렇다면 스가와라 씨보다는 엔리우스 제국의 정치인들을 미워하는 게 맞겠죠.”
나는 눈을 깜빡였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관자놀이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훔친 그가 청량하게 웃으며 덧붙인다.
“사실 요즘 제국 때문에 시끄럽긴 해서, 솔직히 오늘 방문한다던 총사령관인지 뭔지도 별로 반갑지 않았거든요. 소행성대 콜로니 이주정책이니 뭐니 해도 결국 우리를 모르모트로 삼는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성공한다면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도 있어요.”
“글쎄요. 그러면 좋겠지만,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제국에게 배신당해 독하게 살아남은 이들뿐이라. 아무래도 제국에 대한 평가에는 박한 편이에요.”
소행성대 콜로니 이주정책은 캡슐 밖의 사람들을 위해 엔리우스가 최근 추진 중인 프로젝트다. 여전히 죽은 땅에서 살고 있는 다수의 마을 사람들을 소행성대에 차례로 건설 중인 소규모 콜로니로 이주시켜 더 나은 거주환경을 제공한다는 게 겉으로 드러난 목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건 거짓말이었다. 우주에 관한 기술에는 노튼보다 한참 밀리는 엔리우스가 우주 환경에의 안정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어차피 한 번 버려진 캡슐 밖의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이란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그것뿐이라면 좋을까. 이 정책에는 정치적 목적도 다분하다. 뒤늦게 우주 개발에 뛰어든 탓에 이미 안정적으로 우주의 점유권을 쥐고 있는 노튼에 불안감을 느끼고 엔리우스는 강제로 세력을 확장하려 했다. 최근 우주로의 부대 편성도 이러한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콜로니 이주정책에 참여한 마을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파격적인 제국의 지원을 약속하기까지 했지만 캡슐 밖의 사람들은 쉽게 의심을 풀지 않았다. 콜로니는 완성되어 가는데 이주할 사람이 없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제국에서 이곳저곳에 높으신 분들을 파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제국의 명령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제국군의 파일럿으로 일했지만 특히 요즘 들어 제국의 미적지근한 대처에 의구심이 들고 있었다. 다만, 다른 건 몰라도 죽어가는 땅이 아닌 우주의 콜로니로 이주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 이곳 척박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어렵게 생활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 나는 이 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는 중이었다.
평생을 지구에 살았던 사람들은 우주가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콜로니의 환경이 잘 구성만 된다면 지구와 다름없이 사람들은 생활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우주에도 몇 번이나 다녀왔고 노튼의 콜로니에서도 생활한 적이 있었으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한 추진에도 선을 긋지 않은 것이다. 만약 틀렸다면 바로잡으면 된다. 나에겐 그럴 만한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곳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네요.”
혼잣말하듯 중얼거린 말에 그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괜한 말을 한 걸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멋쩍게 웃었더니 곧 그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분명 그럴 수 있겠죠. 나도 그러길 바라고 있어요.”
문득 참 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세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품고 있는 빛이 반짝반짝한 사람이었다. 흙 위에 물을 뿌려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면서 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온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어쩐지 나는 이곳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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