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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세미] 낙원 3

Ryria 2019. 6. 21. 21:58

※ 인간과 초능력자가 대립하는 세계관으로, 아포칼립스에 가까운 설정들이 등장합니다.

※ 다소 잔인한 묘사, 등장인물들의 죽음 소재가 있습니다.

 

 

 

 

 

 

 

에덴에 전용 상담소가 생긴 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인간을 향한 초능력자들의 맹공이 쉴 새 없이 몰아치던 때에는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지만,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이 가진 정신적, 심리적 문제들을 치료하기 위에 뒤늦게 상담소가 만들어진 것이다. 병원 건물에 함께 딸려있는 상담소는 꽤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있어서, 특히 현장에 자주 투입되는 전투요원들의 경우 개인 상담사가 한 명씩 붙어 가장 가까이서 케어해주도록 되어있다.

 

시라부는 현장 전술을 담당하는 팀에서도 전반적인 데이터 및 긴급 전략을 지원하는 요원이었으므로 역시 전담 상담사가 있었다. 달에 한 번 있는 정규 상담 날은 아니었지만, 시라부는 오늘도 병원에 왔다.

 

물리적인 여유가 없었던 탓에 가끔 짬이 날 때마다 시라부는 부지런히 병원을 드나들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생각보다 견고한 듯 가녀려서, ‘아직은 괜찮겠지하며 안심하는 순간 폭격을 맞은 돌탑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시라부는 자신의 상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벌써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 그 날의 일은 시라부의 머릿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으므로, 주기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상담이 끝나고 병원에 온 김에 시라부는 스가와라를 만나고 돌아가기로 했다. 바빠서 자리에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카와니시와 관련해서 물어볼 것도 있었으니 시간을 좀 들여서라도 만나고 가려 했다. 병원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시라부는 스가와라의 행방을 물었다. 진료실에 있는 줄 알았더니 불과 한 시간 전에 응급 수술을 끝냈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쯤은 어디에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자세한 건 모르지만 스가와라가 직접 오늘 하루 종일 진료가 불가능할 것 같으니 다른 의사에게 태스크를 넘겼다고 했다. 얼마나 큰 수술이었기에. 시라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간호사가 웃으면서 덧붙였다.

 

 

환자가 좀 위중한 모양이더라고요. 지금쯤 회복실에서 병실로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접수된 병실은, 어디보자……. 어라, 7층이네요.”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라부도 함께 의아한 표정을 했다. 7층은 연구소와 병원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병실로, 주로 임상시험 환자들이나 위급한 처치가 요구되는 환자들, 혹은 어떤 이유로 일 인실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주로 배정되는 병실이었다. 스가와라도 어쨌든 의사였으니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그는 꽤 오래 전부터 연구소 일에서 손을 뗐다고 들었다. 심심한 의문을 가지고 시라부는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이카와가 복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 그가 크게 다치거나 한 것은 아닐까. 스가와라가 응급 수술에 들어간 후로 오늘 업무를 모두 미뤄둔 것을 보면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다. 시라부의 표정이 부쩍 어두워졌다. 초능력자들의 침입은 소강상태에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다.

 

7층 복도를 걷다가 시라부는 복도 끝 병실로 들어가는 스가와라를 보았다. 아는 척을 하려다가 그가 다급하게 밀고 있는 이동용 침대에 시선이 닿았다. 빠르게 스쳐지나간 얼굴을 어렴풋이 다시 떠올려보았을 때, 시라부는 제자리에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걸음을 멈춘 시라부는 삼 초쯤 뒤에야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환각이거나, 피곤에서 잠을 못 자 헛것을 본 거라고 치부하기엔 형태가 너무나 또렷했다.

 

침대를 밀고 있는 스가와라의 팔뚝 사이로 보인 옆얼굴은 틀림없이 세미였다.

 

차라리 잘못 본 거라고 하고 싶다. 못 본 척, 스가와라가 바쁜 모양이니 다음에 오자고 발걸음을 돌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발걸음은 마음과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시라부는 귀 뒤에서 맥박이 펄떡펄떡 뛰는 것을 감지했다.

 

혼란스러웠다. 병실이 가까워질수록 시라부는 자신이 확인해야 할 진실이 두려워졌다. 아니, 정말로 과민반응일지도 모른다. 세미는 죽었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시신조차 찾지 못했으니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있던 사람은 세미가 아닐지도 몰랐다. 아니, 세미가 아니었는데 시라부의 욕망이 그렇게 보도록 만든 것이어야 했다.

 

병실 옆 명패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일 인실이었지만 근처를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시라부는 천천히 병실 안쪽으로 몸을 돌렸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숨이 멈춘 것조차 모르는 채였다.

 

누군가가 시라부의 시야를 막고 섰다. 온통 한곳에 신경을 집중하는 바람에 누가 튀어나오는지도 몰랐던 시라부는 뒤늦게 당황한 표정으로 멈췄다. 오이카와가 벽에 기대고 서서 태연하게 묻는다.

 

 

재수 없는 후배님이 여기까진 어쩐 일?”

……스가와라 씨한테 볼일이 있어서요.”

으음, 지금은 좀 곤란한데.”

 

 

오이카와가 난감한 표정으로 힐끔 병실 안을 들여다본다. 그러더니 안에서 스가와라가 다급하게 달려 나왔다. 에어컨을 틀어놓아 서늘한 공간에서도 이마에 땀을 흠뻑 적시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미안, 시라부. 내가 오늘 좀 바빠서 그런데 이따 저녁에 다시 와줄 수 있을까?”

무슨 일인데요.”

의사가 바쁜 게 뭐 때문이겠어? 의외로 멍청한 구석이 있네, 켄지로.”

 

 

오이카와가 거들었다. 시라부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둘은 지금 시라부에게 들켜선 안 되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아마 병실 안에 그 답이 있을 거였다. 시라부는 똑똑했고 그 사실은 앞에 선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을 테니 어중간한 대답으론 시라부의 성에 차지 않을 거라고 이미 짐작하고 있을 터, 시라부가 더 주저할 것은 없었다.

 

스가와라를 향해 시라부가 무어라 쏘아붙이려던 순간 안에서 비명이 터졌다. 복도에 걸쳐있는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병실 안으로 돌아간다. 스가와라는 화들짝 놀라서 달려갔고, 시라부를 막고 있던 오이카와는 한 발 늦게 뒤따랐다. 비명이 어딘가 낯이 익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라부는 두 사람보다 천천히 병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시라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비명을 내지르며 침대 위에 누워 울고 있는 사람은 세미였다. 시라부가 마약에 취해 환각을 보는 게 아니라면, 그는 정말로 크레이터에서 죽은 시라부의 선배가 맞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긴급한 상황에서 혼자 멈춘 시간 속에 갇힌 채로 시라부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죽었다. 무려 그의 연인인 카와니시가 그의 죽음을 목격했다. 만약 세미의 죽음을 인정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더라면 그는 결코 세미가 죽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세미는 그 작전에서, 건물이 붕괴되기 직전 죽었다는 게 정답이다.

 

그런데 왜.

 

세미는 악을 쓰며 버둥거렸다.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 되어서 엉엉 울고 있었다. 그의 침대를 둘러싼 세 사람은 세미를 진정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그의 울음소리에 섞여 겨우 말 한두 마디가 들렸다. 살려줘, 아파, 죽기 싫어, 그만해. 단말마의 비명 같은 단어들의 나열뿐이었지만 시라부는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그렇기에 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시라부는 결국 등을 돌렸다. 귀를 막고 싶었지만 상황은 알아야했기에 눈을 질끈 감고 시각을 차단시키는 것으로 대신했다. 잠시 뒤 세미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스가와라가 결국 약을 주사한 모양이다. 진정제인지 마취제인지 알 방도는 없지만 세미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정적만 덩그러니 남았다. 스가와라가 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시라부는 다시 등을 돌려 침대를 바라본다. 세미가 죽은 듯이 누워있다. 침대 오른쪽에 선 야마가타가 손수건으로 세미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세미는 병원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게 꼭 수의 같았다. 시라부는 여전히 세미의 빈 관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란이 진정되고 다들 한숨 돌린 후에야 그들의 시선이 시라부에게 닿는다. 시라부는 표정 없는 눈으로 그들을 마주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멋쩍게 뒷목을 문질렀고, 스가와라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야마가타는 시라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닥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은 후, 시라부는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꿈일 리는 없고, 제가 환각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겠죠.”

…….”

설명 부탁드립니다. 어째서 시신도 찾지 못했다던 선배가 저기에 누워있는지, 제가 납득할 수 있도록.”

 

 

시라부는 화를 내고 있었다. 목소리는 조금의 떨림도 없이 평온하고 고요했지만 그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은 분명히 분노였다. 스가와라가 머뭇거리고 오이카와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가장 멀리서 침묵하고 있던 야마가타가 무겁게 운을 뗐다.

 

 

수고 많았어, 스가. 오이카와도 치료가 필요할 테니 두 사람은 먼저 가. 설명은 내가 할게.”

 

 

야마가타의 체념한 목소리에 스가와라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야마가타는 애써 웃어보였다. 잠시 후 오이카와가 스가와라를 데리고 병실 바깥으로 사라졌다. 야마가타와 시라부, 둘만 남은 공간에 긴장감 어린 정적이 촘촘하게 들어찬다.

 

야마가타는 차분하게, 그러나 느리지 않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시라부에게 털어놓았다. 세미의 시신을 찾았지만 무너진 건물 속에서 유일하게 사지가 온전한 시신이었고, 그래서 양도 절차를 밟아 장례식장이 아닌 연구소로 이송되었다고. 그 직후 시신을 최대한 온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곧장 연구소에서 진행되던 실험을 진행했고, 폐기에 가까워졌을 때 세미가 깨어났다고 했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고, 실험을 진행한 지는 두 달이 지났단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있었던 일들도 과장이나 축소 없이 야마가타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시라부는 점점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열로 부글부글 끓고 있어서 반대로 장기의 체온이 식어가는 것 같았다.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다. 저절로 이가 갈렸다.

 

 

그래서 선배한테 실험을 하려고 시신을 못 찾은 척 연기했다는 말씀이시죠, 벌써 두 달을요.”

 

 

시라부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쳐있었다. 야마가타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는다. 사과를 해도 의미가 없는 일임을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의 표정에 괴로움이 뚝뚝 묻어났다. 시라부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연구소 사람들은 살아난 선배 데려다가 그런 끔찍한 짓을 했고요. 더구나 총에 맞아 죽었던 선배한테.”

……그건 내가 미처 알지 못했어. 미리 알았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됐고요, 그럼 선배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시라부의 질문에 야마가타는 입을 다물었다. 세미가 살아있다는 사실도 안 마당에 시라부에게 더 숨길 것도 없었을 테니, 그가 대답할 수 없다는 건 야마가타 역시 향후 세미에게 닥칠 일들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마 야마가타의 선에서 결정지을 수 있는 사항이 아닌 거겠지. 결국 인간은 똑같은 존재였다. 초능력자로 인해 인류가 멸종될 위기에 놓여있어도 권력의 상하는 생긴다. 소수의 사람은 이 상황에서도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죽어나가는 것은 시라부나 세미처럼 현장에서 발로 뛰는 말단 요원들뿐이다. 변하지도 않고 부술 수도 없는 불변의 섭리였다.

 

시라부는 착잡했다. 세미가 죽은 뒤로 그의 죽음을 잊고 싶어 부지런히 일을 했고 그의 빈자리를 지우려 안간힘을 썼지만 그런 건 없애고자 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내 속으로 괴로워했다. 세미의 유품들을 정리하려 그의 방에 들어갔을 때에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조용히 터뜨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카와니시를 보는 게 가장 힘들었다. 일생에서 제일 사랑했던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목격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모든 게 허탈해지곤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의 모두가 말은 안 해도 알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와 싸우면서, 언젠가 누군가는 죽는 끔찍한 현실이 올 거란 사실쯤은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대책을 세울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힘겹게 작별하고 있는데 시설에 딸린 연구소에서는 기어코 세미를 되살려냈다. 그것도 모자라 최초의 성공작이라며 그를 사람이 아닌 실험체로 보고 있었다. 시라부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진한 혐오를 느낀다. 인류가 궁지에 몰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임을 버려서는 안 되었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실험 따윌 시작한 이상 이곳에도 사람이 살아갈 미래는 없는 것이다.

세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면 카와니시는 어떻게 될까. 단순히 되살아난 게 아니라 이틀에 한 번씩 주입 받은 약물에 의존해 살아가야 한다면, 치명상을 입어도 금세 회복되고 그래서 약물이 체내에 존재하는 이상 결코 다시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걸 그가 알게 된다면. 카와니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이미 한 번 나락을 겪은 그에게, 또 다시 지옥을 보일 수는 없었다.

 

 

세미 선배는 다시 전장에 나가게 되는 겁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선배는 여전히 죽은 사람이에요. 선배가 되살아난 걸 모두가 알게 되는 겁니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랑 주치의인 스가와라, 오늘 도와준 오이카와랑 연구소 몇몇 사람들뿐이야. 네가 알게 된 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고.”

그렇다면 비밀인 거네요, 선배가 살아있는 건.”

 

 

야마가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라부는 그의 대답을 짐작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쉬고 있는 카와니시가 언젠가 복귀하게 되더라도 세미와는 마주칠 일이 없었으면 했다. 세미의 존재가 비밀이라면 차라리 나았다. 카와니시는 몰라야 한다. 세미가 살아있음을, 그래서 여전히 에덴에 존재하고 있음을 그는 알아선 안 됐다.

 

그게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선택일 것이다. 사려 깊은 세미라면 그 역시 카와니시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을 거였다.

 

 

……그 연구, 폐기하실 겁니까?”

그래야 맞는 거겠지. 돌아가서 모든 자료들을 전부 없앨 생각이야. 하지만……, 연구소장이 이번 일을 알게 되었으니 이걸로 끝은 아닐 거야.”

괜찮은 겁니까? 데이터를 없애면 야마가타 선배도.”

징계를 받고 쫓겨나겠지. 그래도 갈 곳은 있으니 괜찮아.”

 

 

야마가타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어.”

 

 

그는 지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야마가타는 세미와 친한 사이였으므로, 아마도 세미에게 무거운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거였다. 시라부는 슬픈 표정으로 야마가타와 그 너머 세미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세미는 평온하게 잠들어있었다, 자는 건지 죽은 건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시라부는 천천히 자리를 떴다. 침대에 누워서 가지런히 눈을 내리감고 있는 세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괴로운 표정으로 병실을 나섰다.

 

 

 

 

 

 

*

 

 

 

 

 

 

에덴은 결계를 관리하는 공식 기관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도록 초능력자의 출입을 통제하는 결계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결계 안에서는 에덴의 본부와 병원, 연구소가 있는 지부를 제외하고 크게 여섯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주택가로 지정하고 있다. 구역마다 필수 시설들이 중앙에 배치되어 있고, 정해진 인구만 상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두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체계적인 도시에서 살게 된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맹공을 퍼붓던 초능력자들이 공세를 주춤한 틈을 타 개발된 리미테이션 시스템의 역할이 컸다. 초능력자에게 대처하기 위해 만든 특수 무기인 리미테이션 건에도 해당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는데, 초능력자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파동을 소멸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들도 기이한 능력만 없다면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으므로, 리미테이션 시스템의 존재는 그야말로 인류가 벼랑 끝에서 발견한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리미테이션 시스템도 초능력자가 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에덴에서는 해당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도록 리미테이션 건의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하기로 한다. 세미는 바로 에덴의 훈련 기관에서 전문적으로 교육 받은 요원 중 하나였다.

 

리미테이션 건은 일반 총과는 많이 달랐다. 금속 탄환이 들어있어 상대의 피부를 찢는 게 목표인 일반 화기와 다르게 그것은 목표에게 명중하면 일시적으로 제한된 범위의 결계를 만들어낸다. 단순히 명중시키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따로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도 없겠으나, 아쉽게도 리미테이션 건은 탄환이 명중한 후 터지는 타이밍부터 결계의 범위와 강도, 탄환을 발사하는 방향과 속도까지 전부 사용자가 직접 조절해야 했기 때문에 다루기가 까다로웠다.

 

초능력자가 사용하는 특수한 파동을 응용해 만든 것이라 평범한 인간들은 대신 뇌파를 사용해 총을 제어한다. 훈련 기관을 무사히 수료한 전원에게 개인용 커스텀 건을 제공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특혜다.

 

훈련생 시절부터 그는 우수했다.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아 동기들에 비해 두 해를 빠르게 훈련을 수료했고, 남은 2년 동안 후배 기수의 조교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카와니시와 시라부를 만났다. 두 사람은 동기였고, 세미가 맡게 된 팀의 일원이었다.

 

세미가 카와니시와 처음 만난 게 그때였다. 첫인상이 딱히 좋았던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그때는 지금처럼 두 사람이 애틋한 관계로 발전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터였다. 어쨌든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사적인 감정을 가지는 건 불필요한 소모라 생각한 세미는 어느 순간부터 선을 넘어 다가오는 카와니시를 내내 거부했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이게 되었다.

 

카와니시는 리미테이션 건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세미보다 우수할 정도로 섬세하고 민감한 구석이 있어 일찌감치 전장의 선두에 서게 된 세미를 지원하는 데에 특히 탁월했다. 서로의 단점을 능숙하게 보완해낼 수 있을 정도로 죽이 잘 맞던 두 사람은 전장에 나가 늘 살아 돌아왔다.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는 둘은 그럼에도 기뻐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둘 중 하나가 죽을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운이 좋게 살아있을 뿐.

 

세미는 아주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이렇게 카와니시를 혼자 둔 채 죽지도 살지도 못할 거였다면 차라리 그때 계속 밀어낼 걸 그랬다. 차라리 크레이터에서 죽은 채로 그저 계속 죽어있었다면 홀로 남은 카와니시를 눈이 시리게 보고 있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 시신도 찾지 못하도록 무너지는 건물 잔해를 붙들고 땅바닥에 처박힐 걸 그랬다.

 

세미는 죽던 날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 엉망인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카와니시의 눈을 기억한다. 이미 한계를 넘은 몸으로 이름 모를 붉은 머리의 초능력자를 상대하다 이마에 겨눠진 총구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 카와니시의 것이었으므로 찰나의 순간 세미는 그게 환상인줄로만 알았다. 점차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고서야 세미는 무너지는 건물 안에서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로 그를 끌어안으러 가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총성이 울리는 소리만 귓가에서 웅성거렸다.

 

 

…….”

 

 

아직 평화는 낯설다. 늘 전장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꽃향기도, 녹음이 그득한 풍경도 익숙지 않았다.

 

 

에이타.”

…….”

 

 

침착한 목소리에 세미는 뒤늦게 얼빠진 대답을 했다. 옆에 선 스가와라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세미는 곁눈질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린다.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고 있는 평화로운 공원, 그 너머 가로수가 늘어선 도로 건너편에 마당이 딸린 집이 한 채 있다. 야마가타의 말대로라면 현재 카와니시가 요양 차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세미는 다시 전장에 나가게 되었다. 세미 에이타라는 이름 대신 외우기도 어려운 코드네임을 걸고, 얼굴도 가린 채로 또 다시 선두에 선다. 다만 그 전에 카와니시가 무사한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직접 카와니시를 진찰했던 스가와라에게서 큰 부상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세미는 외상보다 다른 것을 더 걱정했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경험,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임이 틀림없다. 그 일이 있은 후 두 달이 넘게 지났음에도 겨우 최근에야 먹을 걸 입에 대기 시작했다니, 카와니시는 여전히 세미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언제쯤이면 훌훌 털어낼 수 있을까, 그는. 최대한 늦었으면 했다. 되도록 세미가 다시 한 번 죽어 이 세상에서 없어질 때까지. 미처 털어내지 못해 미련처럼 세미를 끌어안고 있게 되더라도, 그래서 카와니시가 다시 전장에 복귀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세미가 이 꼴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면 카와니시가, 그의 마음이 어떻게 망가질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가 에덴에 돌아오면, 세미가 에덴에서 싸우는 한 어떤 식으로든 마주칠 수밖에 없다.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숨긴다고 해서 영원히 감출 수는 없는 것이다.

 

한참을 덩그러니 서있다가 세미는 이윽고 발걸음을 돌렸다. 주치의 명목으로 따라온 스가와라가 세미의 등 뒤에 대고 묻는다.

 

 

안 보고 갈 거야?”

 

 

세미가 원한다면 스가와라가 직접 카와니시를 불러낼 생각이었으리라. 스가와라의 물음에 제자리에 서서 침묵하던 세미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쓸쓸한 목소리였다. 점차 스가와라와의 거리가 벌어진다. 세미는 더 이상 뒤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

 

 

 

 

 

 

세미에게 스케줄이 생겼다. 당장 전투소대로 발령을 받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가벼운 훈련이나 테스트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세미를 당장 투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해 주치의인 스가와라와 담당자인 야마가타의 제안에 따라 며칠 세미의 상태를 지켜보며 향후 전투 투입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생전에 뛰어난 요원이었지만 죽었다 되살아나기도 했고, 부작용이 특정되지 않은 약물을 꾸준히 섭취해야 했기 때문에 세미의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초능력자와의 전투에서 리미테이션 건의 사용은 필수였기 때문에 총기 적합성 테스트도 거쳐야 했고, 세미 전용으로 새로 지급받은 무기에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세미는 요즘 오이카와와 일상을 함께하는 중이었다.

 

세미의 테스트 담당자로 오이카와가 선뜻 나선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그 역시 세미와 동기이긴 해도 자주 볼 수 있는 얼굴은 아니라 스가와라와 다르게 좀 서먹한 사이였다. 그래도 생사를 함께한 동료였으니 동정심이라도 생긴 건지 오이카와는 바쁜 시간을 쪼개 세미의 테스트에 직접 참여하기로 했다. 세미는 거기에 스가와라의 입김이 약간 작용했음을 내심 짐작했다.

 

오이카와와는 보기보다 합이 좋았다. 아마 함께 최전방에서 싸웠더라면 꽤 좋은 조합이었을 거라고 세미는 생각했다. 촘촘한 사고로 조절해야 하는 리미테이션 건에 적응하기 쉽도록 옆에서 조언을 얹어주기도 했고, 신체 단련이 필요할 때에는 기꺼이 세미의 대련 상대가 되어주었다. 꼼꼼하게 세미의 신체 상태를 파악하더니 금세 일주일 치 단련 목록을 만들어 세미에게 건네기도 했다. 식단은 스가와라의 몫이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훈련장을 나가는 그 뒷모습에는 내심 경외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죽었다가 되살아난 몸이라고 해도 생전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왕창 주사한 약물 덕에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 세미는 빠르게 적응해갔다.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묻고 빈자리를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로 다시 채워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좀 무거운 것 같네.”

……몸무게가?”

 

 

땀 냄새가 훅 끼쳤다. 물론 세미의 것은 아니었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을 않는 세미 옆에 오이카와는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반짝 눈을 뜬 세미가 매운 호흡을 몇 번 뱉어내고 되물었다. 오이카와는 헛웃음을 짓는다.

 

 

그럴 리가. 생각이 많아 보여.”

그런가. 오히려 지금 아무 생각도 없는데.”

움직임이 둔해.”

 

 

타박하듯 말하며 오이카와가 손을 뻗었다. 물끄러미 그의 손등을 바라보다가 세미는 그의 손을 붙들고 일어섰다. 의자에 앉아서 둘의 대련을 지켜보던 스가와라가 차트를 들고 사무적인 걸음으로 다가왔다.

 

 

살살 하라니까. 테스트에서 힘 빼서 뭐해.”

스가쨩은 무슨 그렇게 섭섭한 소릴. 이런 건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상대한테 실례라고.”

 

 

스가와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미는 뒤늦게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만도 하다. 오이카와와 맨손 대련을 할 때에는 도무지 가볍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 날카로운 기세로 세미의 급소를 노렸다. 그랬으니 세미라고 그를 느슨하게 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정도로 끌어올려야 쉬는 동안 몸이 무뎌지지 않아.”

맞는 말이야.”

 

 

세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오이카와의 이마에 땀방울이 흥건하다. 세미는 스가와라와 기분 좋게 웃으며 대화하고 있는 오이카와를 빤히 바라보다가, 손바닥을 펼쳐 제 이마를 문질러본다.

 

땀이 거의 나지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움직였는데 손바닥이나 발바닥이 조금 꿉꿉한 것을 제외하면 거짓말처럼 온몸이 뽀송뽀송했다. 이것도 약물의 영향일까. 마른 손바닥을 문지르며 세미는 쓰게 웃었다.

 

차츰 평범한 사람의 몸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숨 가쁘게 움직이면 힘든 건 똑같지만 금세 호흡이 정돈되었다. 상처도 일상에서 생길 법한 가벼운 것들은 눈 깜짝할 새에 나았다. 물은 먹지만 음식은 먹지 않아도 지낼 수 있었다. 미각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아마 약물 자체로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스가와라는 설명해주었다. 먹는다고 이상이 생기진 않으니, 맛있는 게 먹고 싶으면 부르라고 웃어주는 그에게 세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투에 나가지 않는 평범한 일상. 세미는 그 속에서 조금씩 침잠하고 있었다. 몸이 여유로워지면 상대적으로 머리는 생각할 거리를 찾는다. 생각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침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이카와는 그런 세미를 이해하기라도 한다는 듯 틈만 나면 훈련장으로 불러냈다. 그와 대련하는 동안은 복잡한 머릿속을 비울 수 있어 차라리 좋았다. 타이밍도 기가 막혀서 세미가 카와니시의 얼굴을 어스름하게 떠올릴 때쯤 오이카와는 세미를 건져 올리곤 했다.

 

 

신체 상태에 대한 보고는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리미테이션 건 조정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하니까 그 부분은 오이카와가 도와줄 거고……. 그 뒤에는 아마 부대를 배정받게 되지 않을까.”

그럼 싸우는 건 어떻게 해? 세미쨩은 공식적으론 죽은 사람이잖아.”

어제 받은 공문에 따르면 특수 제작된 전투용 제복이랑 전용 헬멧을 착용하게 된다나봐. 얼굴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숨겨야 하니까.”

불편하겠는데.”

 

 

테스트가 얼추 끝나간다는 뜻이다. 둘의 대화를 얌전히 듣고 있던 세미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어쩔 수 없지, 아직은 비밀이라고 하니까. 나도 차라리 비밀인 게 편해. 카와니시에게 절대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거든.”

 

 

네 개의 눈동자가 세미를 향했다. 세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둘을 마주보았다. 물끄러미 세미를 바라보던 오이카와가 운을 뗐다.

 

 

괜찮아?”

 

 

참 많이도 들었던 질문이다. 그래서 세미 스스로도 종종 물었던 것이었다.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괜찮은지 괜찮지 않은지 선택해서 받아들이기에 세미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다. 한 번 죽었고 억지로 되살아나서 다시 지옥 같은 전장에 내몰린다고 해도, 어쨌든 생전에 세미가 늘 하던 일이었으니 특별할 것도 없었다. 세미가 웃으며 대답했다.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럼 다행이지만.”

 

 

오이카와의 말투에서 아주 약간의 의구심을 느꼈다. 스가와라는 드러내놓고 세미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적응이 빠르다며 오이카와는 세미에게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좀 투정부려도 좋고 억울해 해도 좋을 법한데, 화 한 번 내지 않고 테스트에 응하는 게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단다. 예전에도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은 올곧은 주제에, 너무 올곧아서 필요한 일이라면 자신을 얼마나 깎아내는 일이든 상관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이 주변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한다고.

 

다시 깨어난 세미가 진정으로 안도했던 것은 크레이터가 실패로 돌아간 직후 죽은 사람이 세미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희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고 세미는 조금 편안해졌다.

 

 

 

 

 

 

*

 

 

 

 

 

 

에덴이 야심차고 대담하게 내놓은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그들은 한동안 잠잠했다. 이번 전투로 잃은 게 많을 테니 당분간 이브를 도발할 일은 없을 거라고 레온은 보고했다. 이걸로 분쟁이 끝났으면 좋으련만. 우시지마가 침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에덴의 결계는?”

아직 분석이 덜 끝났어. 완전 공략이 불가능한 상태야. 도대체 어떤 물질로 만들어진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에덴이 보유한 특수한 총의 원리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있어. 하다못해 샘플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건 양산용 모델이 아닌 모양이라.”

의식만으로도 조절할 수 있는 것 같다. 총의 주인이 죽으면 함께 파괴되는 것 같더군.”

그래서 골치가 아파. 무작정 대규모 공습을 펼치기엔 그 안에 민간인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니까.”

 

 

레온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지겹게 이어져온 전쟁은 에덴이 궁지에 몰렸음에도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브를 이끄는 우시지마의 고집스런 정의 때문이기도 했지만, 에덴의 무장 기술은 생각보다 견고하다. 예측이 특기인 초능력자가 있음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소파에서 늘어지게 누워있던 텐도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칙칙함은 떨쳐내고 평온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우시지마와 레온이 동시에 텐도를 바라본다. 늘 악동 같은 일을 꾸미고 있는 수상한 눈이 어쩐 일로 굳어져있다. 안색이 창백하다. 또 뭔가를 본 것은 아닐까. 잠시의 정적을 깨고 우시지마가 텐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살아있어.”

누가?”

내가 분명 죽였는데. 죽은 걸 확인했는데.”

 

 

에덴과 크게 충돌했던 그 날의 일을 이후로 텐도는 당분간 예지를 사용할 수 없었다. 슬슬 기력이 찰 때가 되었으니 또 얼마간 이후의 미래를 본 듯했다.

 

텐도가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조명이 어두웠으나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된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진중해진다. 어지간하면 늘 입가에 웃음을 달고 다니는 그가 저렇게 표정을 굳힌 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닌 듯하다.

 

 

그 작전에서, 분명 내가 죽였는데. 살아있어.”

……그 정체 모를 괴물?”

이브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사람. 사람인가,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떻게 살아있지? 분명히 죽였는데, 내 예지가 틀린 건가?”

 

 

텐도는 혼란스러워보였다. 그가 죽였다는 사람은 필시 작전이 있기 전 텐도가 장차 이브에 피할 수 없는 위협이 될 거라며 지금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인물이었다. 별로 특별한 능력 없이 단순히 신체 능력만으로 싸우는 평범한 인간이라 이곳의 모두가 의구심을 가졌지만, 텐도의 예지는 무시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니라 결국 수긍했다. 심지어 전투 요원도 아닌 그가 직접 나서서 죽여야 한다던 그의 머리에 총구를 박아 넣었다고 했다. 생명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직후 건물이 무너져 잔해 속에 파묻혔으니 초능력자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텐도는 으쓱였다. 그런데, 지금 텐도는 그가 살아있는 미래를 본 것이다.

 

 

뭔가 더 본 것은 없어?”

지금 외곽에 건조 중인 결계를 방어 중이었어. 위험해, 이건…….”

 

 

텐도는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웃었다. 잠시 말끝을 흐리던 그가 우시지마를 보고 경직된 목소리로 운을 뗐다.

 

 

괴물이야. 죽여도 죽지 않는.”

그게 가능해?”

……에덴이 또 뭔가를 했군.”

 

 

우시지마는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진다. 총사령관용으로 널찍하게 만들어진 방 안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어려울 거 없잖아요. 죽여도 죽지 않는다면 잡아서 가두면 되는 거 아닙니까?”

고시키, 노크 하라고 했잖아. 그리고 엿듣는 건 나쁜 습관이야.”

 

 

문을 열고 들어온 고시키에게 레온이 가벼운 면박을 주었다. , 죄송합니다. 뒷머리를 긁으며 머쓱한 표정으로 웃은 고시키가 품에 안고 온 서류를 한 무더기 우시지마의 책상에 내려놓는다.

 

 

에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으니 이쪽에서도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어. 무엇보다 그런 괴물 같은 게 얼마나 더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레온의 말에 우시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불명의 괴물을 상대하자고 부대원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초능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평범한 인간쯤은 손가락 하나로도 죽일 수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그들도 기본적으로 인간의 몸을 하고 있다. 치명상을 입거나 급소를 꿰뚫리면 언제든 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에덴 북동쪽에 건조 중인 결계 장치를 파괴하는 게 우선이다. 부대를 파견하지 않을 수는 없어. 다만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어 계열을 위주로 편성하는 게 좋겠군.”

 

 

결계가 완성되면 그때부턴 달리 방법이 없다. 결계는 초능력자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특수한 장치였으므로 완성되기 전에 반드시 파괴해야 했다. 이브에 비해 에덴은 모든 것에서 한참 밀렸지만, 그럼에도 초능력자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었으니 그들의 기술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쪽에서 결계의 성분과 원리를 파악해낸다고 하더라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 이브가 에덴의 기술을 따라붙으려 노력하는 만큼 그들도 분명 이브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가속하고 있을 터였다.

 

 

레온, 결계 파괴를 위한 부대를 편성하고 그들에게 명령을 하달해. 죽지 않는 자, 혹시라도 그를 만난다면 최대한 접촉하지 말고 결계의 기반을 파괴하는 데에 집중하라고.”

알겠어.”

 

 

우시지마는 턱을 쓸었다. 그리고 침착하게 모든 면에서 우위인 이브가 에덴에게 패배할 가능성을 가늠해본다. 텐도가 지목한 죽지 않는 자는 아직 하나뿐이다. 에덴이 무슨 짓을 했든 본래 인간이었던 자를 되살릴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 수는 증가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초능력자들이 그들에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죽지 않는다는 것은, 초능력자의 기이한 능력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시키.”

.”

결계 파괴 작전에 편성하겠다. 가서 죽지 않는 자를 살피고 와.”

 

 

지루한 듯 바닥에 발을 굴리던 고시키가 우시지마의 말에 밝은 표정을 짓는다. 바른 자세로 서서 우시지마를 향해 어울리지도 않는 경례를 하고서 고시키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령 받았습니다!”

 

 

텐도와 레온이 나란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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