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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혈귀 오이카와랑 동거하는 대학생 스가의 짧은 이야기입니다.

※ 끝이 매우 엉성(...)합니다. 가볍게 읽어주세요.

※ BGM은 제가 들으면서 쓴 곡입니다. 안 들으셔도 무방해요 :)

 

 

♪ BGM : 봄의 찬가 - 앨리스 하트

 

 

 

 

 

 

가을바람이 훌쩍 다가왔다. 높고 맑은 하늘빛은 해가 지고 난 후에도 눈이 아플 만큼 선명했다. 그 한가운데 성큼 뜬 커다란 달덩이가 엊그제 먹고 체했던 우유빵 모양과 꼭 닮아있었다. 덕분에 하루 종일 굶어야 했다. 늦은 시간까지 과제를 하느라 녹초가 된 스가와라는 무거운 발걸음을 직직 끌어 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혼자 사는 집에 스가와라 말고 또 누가 있겠냐만, 그것은 의외로 고독을 싫어하는 스가와라 나름의 외롭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 평소였다면 후다닥 불을 켜 어두운 방안을 밝히고, 오랫동안 방치해 냉기가 서린 집안에 보일러라도 틀었을 것이었다.

 

 

스가 왔어? 오늘은 좀 늦었네.”

 

 

그러나 세 달 전부터 스가와라가 늘 봐왔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벗어놓은 신발을 정리하며 스가와라는 침대에 기대 태평하게 TV채널이나 돌리고 있는 오이카와를 흘겨보았다. 등 뒤에 세워놓은 여러 겹의 쿠션 옆에는 빨대가 꽂힌 머그컵이 놓여있었다. 스가와라에게서 답이 없으니 컵을 들고 빨대를 쪽쪽 빨면서 오이카와가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긴 한데, 어딘지 폭력을 부르는 얼굴이었다.

 

오이카와가 스가와라의 집에 강제 입주한 것도 벌써 세 달째였다. 낯선 사람과 살을 부대끼며 살다보면 서로의 생활방식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게 마련인데, 벌써 반의 반 년이 지났음에도 스가와라에게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오이카와가 들고 있는 컵의 내용물이다. 달콤한 커피라도 마시듯 오이카와가 맛있게 홀짝이고 있는 저 붉은 액체, 그것이 내뿜는 특유의 비린향이나 강렬한 색채는 그러니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겉모습은 여느 백수와 다름없었다. 목 늘어난 티셔츠에 엉덩이가 다 헤져서 후줄근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옆에는 늘 리모콘을 끼고 사는 오이카와는 딱 사고치고 해고당한 백수 삼촌 꼴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집에서만 뭉그적거리는 게 옷은 왜 이렇게 빨리 닳는가 싶다.

 

 

옷 좀 갈아입고 살아. 일부러 없는 돈 털어서 여러 벌 사줬더니.”

진정한 미남은 아무거나 걸쳐도 태가 나는 법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불혹의 나이에 해고된 불행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느냔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는 스가와라의 표정은 말끔하게 무시한 채 오이카와는 빨대만 쪽쪽 빨았다. 오이카와의 목울대가 몇 번 울렁이더니 금방 빨대 안에 공기방울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스가와라가 끔찍한 얼굴로 물었다.

 

 

도대체 그런 끔찍스러운 건 어디서 구해오는 거야?”

끔찍하다니, 내 일용할 식량한테 그게 무슨 실례야?”

설마 사람을 죽인다던지, 그런 건 아니지?”

걱정하지 마. 산에서 직접 돼지 멱따서 구해온 거니까.”

 

 

생긋 웃는 낯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스가와라가 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그것을 보고 오이카와가 빙글빙글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람 쪽이 더 맛있긴 한데.”

……내 몸에 손대면 죽일 거야, .”

 

 

스가와라는 질색을 했다. 그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듯 오이카와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오이카와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는 분명히 있었지만 그는 그것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어떤 존재였으므로 그를 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상식 밖의 존재인 그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고민에 잠겼던 스가와라에게 오이카와는 아주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았다.

 

? 나는 그냥 오이카와야. 오이카와 토오루.

 

 

 

 

 

 

 

 

 

어느 존재에 관한 고찰

오이카와 × 스가와라

(♥행주님♥ 달성표 보상)

w. Ryria

 

 

 

 

 

 

 

 

딱 세 달 전이었다. 지금보다 공기가 뜨거웠고 내리쬐는 햇빛은 지상의 것들을 모두 태워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이글이글 끓었으며 이따금씩 생긴 적운에서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했던 때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알바를 마치고 스가와라는 저녁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한낮은 정말 피부가 녹아 아스팔트에 달라붙을 정도로 더웠지만 해가 진 저녁은 그래도 비교적 선선했다. 땀도 땀대로 흘렸지만 샤워는 글렀고, 기분이나 내고 싶어 맥주 한 캔도 사들고 팔랑팔랑 걸어가던 중이었다. 좁은 사거리, 전봇대 뒤로 이어지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사람이 앓는 소리가 스치듯 들렸다. 그것에 스가와라는 홀린 듯 멈췄고 누가 아프기라도 한 건가 싶어 호기심에 골목길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그때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야 했었다. 과도한 호기심은 분명 인간에겐 독이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 한 명이 길바닥에 쓰러져있었다. 한겨울도 아니라 얼어 죽을 걱정도 없었는데지금 생각하면 겨울이라고 해서 그가 얼어 죽을 위인도 아니었고왜 괜한 오지랖을 부렸는가 싶다. 쓸데없이 이런 건 또 못 지나치는 성격이라 스가와라는 남자의 곁으로 다가가 잘게 떨리는 어깨를 툭툭 건드려보았다.

 

 

이봐요, 괜찮아요? 구급차 불러줘요?”

 

 

남자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신음을 내며 그저 앓기만 해서 스가와라는 하는 수 없이 휴대폰을 들었다. 뱀처럼 느리게 움직인 남자의 팔이 스가와라의 손을 잡았다. 얼른 도와달라는 신호로 받아들인 스가와라가 서둘러 전화를 걸려는 찰나의 순간, 턱 밑까지 짙은 땀 냄새가 훅 다가왔다.

 

우악스러운 힘에 밀려 스가와라는 뒤로 자빠졌다. 스가와라가 들고 있던 비닐봉투에서 도시락이며 맥주 캔이 빠져나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제야 스가와라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자신을 깔고 앉은 남자의 풀려있는 동공이 가장 위협적인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 저기요? 저기? 이봐요?”

 

 

손목이 저릴 만큼 꽉 붙잡힌 손을 움직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질 않았다. 악력은 둘째 치고 내리누르는 힘이 어마어마했다.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었다. 아파서 죽어가던 게 아니었나? 역시 그냥 괜한 오지랖 부리지 말고 지나쳐야 했었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눈알을 굴리던 스가와라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나른한 눈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동공이 풀려있었다. 남자는 스가와라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씩 웃었다. 그 웃음에 본능적으로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남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 하얗게 빛난 것은 분명히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날카롭고 커다란 송곳니였다.

 

인지하지 못할 만큼 남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뾰족한 것에 본능적인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뒤늦게 알아차리고 소리를 지르려던 순간 남자의 갈색 머리카락이 스가와라의 턱 위로 힘없이 고꾸라졌다. 비명이 튀어나가려던 입 밖으로 대신 두려움 섞인 한숨이 나왔다. 손목을 억누르고 있던 악력도 사라졌다.

 

 

……?”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킨 스가와라는 제 가슴께에 기대어 기절한 정체불명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

 

 

 

 

 

 

 

 

 

그렇게 쓰러져버린 걸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어 스가와라는 또 오지랖을 부렸다. 그 시간, 그렇게 기절해버린 오이카와를 어깨에 둘러메고 끙끙 집까지 데려왔던 기억이 눈앞에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후회뿐인 순간이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늦은 저녁을 차리기 위해 앞치마를 매고 불앞에 선 스가와라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해?

으아아악!”

뭐야, 왜 그래?”

 

 

오이카와는 기척도 없이 나타나 스가와라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덩치도 큰 게 걸음은 어찌나 사뿐사뿐 가벼운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한 집에 살고 있다는 것도 까먹을 만큼 그는 고요했다. 덕분에 이 일상에 스가와라는 도무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은근슬쩍 스가와라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어깨에는 턱을 기댔다.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은 스가와라는 빽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나타나지 좀 말라고! 간 떨어지겠네.”

그럼 내가 주워 먹지 뭐.”

 

 

이런 미친. 쌍욕이 절로 나왔다. 입맛까지 다시며 싱긋 웃는 오이카와의 얼굴에 스가와라의 안색이 일순 창백해졌다. 팔뚝에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보고 오이카와가 진득한 손으로 허리 근처를 매만졌다. 그 기괴한 느낌에 퍼뜩 정신을 차린 스가와라가 팔꿈치로 있는 힘껏 오이카와의 복부를 가격했다.

 

 

.”

농담으로라도 그딴 소리 하지 마! 쫓아내버린다! 죽여 버릴 거야!”

 

 

오이카와는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허리를 굽히고 바닥을 뒹굴었다. 새빨개진 얼굴로 스가와라가 씩씩거렸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난 후에야 스가와라는 식탁에 앉을 수 있었다. 간단하게 계란 프라이와 소고기, 양파를 얹은 밥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출출한 배를 움켜쥐고 스가와라는 수저를 들었다. 때마침 그 앞에 앉은 오이카와는 여전히 피가 든 컵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 진짜 못살겠다. 비위가 약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한 발 물러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오이카와. 좀 저리 가서 먹으면 안 될까?”

밥은 같이 먹어야 좋은 거라며?”

네가 먹는 건 밥이 아니고……. 아무튼 속이 안 좋아서 그래.”

약국에서 소화제 사다줄까?”

 

 

스가와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리고 금방 속세에의 욕구에 초탈한 얼굴이 되었다. 이쯤 되니 오이카와가 일부러 이러는 건가 싶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눈치 없는 말본새인가. 당장에 내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스가와라는 생각보다 포기가 빠른 사람이었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스가와라는 결국 밥알만 세다 말았다.

 

 

 

 

 

 

 

 

 

*

 

 

 

 

 

 

 

 

 

분명히 가위에 눌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목부터 가슴 부근까지 누가 꽉 밟고 있는 것처럼 속이 답답했다. 아침 해가 채 떠오르지도 않은 아주 이른 새벽, 스가와라는 기분 나쁜 기시감에 퀭한 얼굴로 눈을 떴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가지 않는 생생한 압박감에 느리게 고개를 돌려보니, 멀리서 볼 때보다 한층 거대한 오이카와가 스가와라를 죽일 듯 덮고 자고 있다. 잠에 들기 전까지만 해도 스가와라가 덮고 있던 이불은 돌돌 말려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 스가와라가 목을 짓누르고 있는 오이카와의 팔을 걷어냈다. 전혀 망설임 없이 스가와라는 상체만 일으켜 다리로 오이카와를 침대 밖으로 밀어 떨어뜨렸다. 잠자리로 깔아둔 두툼한 이불 위로 떨어진 오이카와가 짧은 괴성을 질렀다. 아프지도 않을 텐데 엄살은. 잔뜩 신경질이 난 표정으로 스가와라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우유를 꺼내는데 냉장고 아래 칸을 독차지하고 있는 큼직한 박스가 눈에 띄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남은 혈액 통이 딱 두 개밖에 없었는데 어느 새 새로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스가와라가 잠든 늦은 밤에 나가서 새로운 혈액들을 가져오는 것 같은데, 잠귀가 밝은 스가와라조차 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오이카와의 발걸음은 조용했다.

 

오이카와가 피를 마시는 모습과 별개로 이것도 늘 보고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날이면 늘 취객들의 숙소가 됐던 스가와라의 집에는 덕분에 꽤 오랫동안 아무도 들일 수가 없었다. 누가 보면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이카와와 함께 지낸 지 벌써 3개월째였다. 스가와라는 나름대로 흡혈귀사실 오이카와를 진짜 흡혈귀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지만라는 존재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 첫째, 그들이 햇빛을 무서워하고 그 빛에 닿으면 타버린다는 둥, 재가 되어 사라진다는 둥의 이야기는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었다. 오이카와는 햇빛이 있는 낮에도 잘만 돌아다녔다. 다만 그의 습성이 야행성이라 밤의 활동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둘째, 십자가? 마늘? 그런 거 하나도 소용없다. 자꾸 침대에 기어 올라오는 오이카와를 막기 위해 침대 주변에 마늘과 십자가를 둘러놓았는데 말짱 도루묵이었다. 잠들기 전까지 마늘의 독한 향 때문에 눈만 아팠다. 독실한 무교인 스가와라가 주기도문까지 외워보았지만 역시 쓸모없었다.

 

셋째, 흡혈귀의 양식은 혈액이 맞지만, 인간 세상에 섞여 사는 그들은 대부분 산짐승의 피로 연명한다고 했다. 이건 오이카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라 신빙성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여태까지 오이카와의 행동들을 보면 딱히 사람을 해치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흔히 흡혈귀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로 묘사되고는 하는데 실제로는 얌전한 초식동물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었다. , 인간보다 힘이 몇 배는 셌다. 그건 좀 별개의 문제였다.

 

 

스가, 전화 왔어.”

 

 

마지막으로, 서양에선 공포의 대상인 흡혈귀가 실제로는 저렇게 게으른 생물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그의 신봉자들이 보면 기겁할 일이었다. 어느새 침대 위에 도로 올라와 베개를 끌어안고 뒹구는 모습은 영락없는 고양이다.

 

 

여보세요.”

 

 

샤워를 마치고 스가와라는 책상 위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흔한 친구의 연락이지만 또 받지 않으면 그것대로 잔소리를 듣는 탓에 끊기기 전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대뜸 뜬금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스가, 소개팅할래?

……?”

 

 

침대에 앉은 자세로 오이카와가 스가와라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를 탈탈 털던 스가와라가 우뚝 멈춰 섰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리야? 황당한 표정으로 스가와라가 물었다.

 

 

옆 학교 현대무용과. 엄청 예뻐.

난 지금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한데.”

 

 

엄밀히 말하면 몸뚱이 둘이지만.

 

 

부탁이야. 내가 눈물을 머금고 너한테 넘길게.

왜 하필 나야?”

어떻게 안 되겠냐? 너 약간 다정한 왕자님 스타일이잖아. 피부 하얗고.

여자애한테 까였냐?”

젠장, 아픈 데 찌르지 말아줄래?

 

 

좀 어이가 없어서 스가와라는 실실 웃음을 터뜨렸다. 계속 거절하긴 좀 그렇고, 할 일도 없는데 그냥 한 번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생각으로 스가와라가 알겠다고 대꾸했다. 전화를 끊고 등을 돌렸더니 성큼 다가온 오이카와가 코앞에 서있다. 기척 좀 내고 다니라니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가와라가 빽 소리를 쳤다.

 

 

소개팅?”

.”

하는 거?”

그렇게 됐네.”

 

 

연락처 들어왔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스가와라가 번호를 저장했다. 다 늘어난 바지 주머니에 불량하게 손을 꽂고 오이카와가 스가와라를 지켜보았다. 즐거워 보이는 스가와라가 휴대폰을 보며 실실 웃고 있으니 괜히 심통이 난 오이카와가 덜 말라 축 처진 스가와라의 머리끝을 잡아당겼다.

 

 

!”

소개팅, 재밌어?”

뭐야, 왜 시비야?”

재밌냐고. 많이들 하던데, 그게 그렇게 재밌는 거야?”

재미로 하나, 그냥 하는 거지. 너 소개팅도 알아?”

내가 너보다 훨씬 오래 살았거든?”

몇 살인데?”

그런 거 안 세. 끽해야 백 년 사는 인간들이나 나이 세고 다니지.”

그럼 혹시 할아버지?”

 

 

오이카와가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장난치던 스가와라가 슬슬 발을 뺐다. 수업은 오전밖에 없으니,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정성스레 간만의 소개팅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런 스가와라를 지켜보는 오이카와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건지 내내 뾰로통했다. 이거나 마시고 있으라고 스가와라는 냉장고에서 혈액 통을 하나 꺼내 오이카와에게 던졌다. 가볍게 받아든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나도 가도 돼?”

어딜?”

너 따라서.”

안 돼. 누누이 얘기했지만 너는 너무 눈에 띄는 타입이라서.”

집에만 있기 심심하다고.”

세 달 동안 집에만 잘 계셨는데요?”

 

 

팔짱을 끼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있던 오이카와가 갑자기 웃통을 벗었다. 목 늘어난 후줄근한 티셔츠가 맨바닥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그러고는 옷을 갈아입는 스가와라의 옆에 서더니 멋대로 옷장을 뒤진다. 한쪽 다리에 바지를 꿰어 입던 스가와라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쪘다.

 

 

, 너 뭐해?”

옷들이 다 작아. 스가와라, 키 몇?”

죽을래?”

 

 

적당히 근육 잡힌 탄탄한 몸, 딱히 운동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군살 하나 보이지 않는 배에는 꽤 굴곡이 졌다. 키도 큰 주제에 몸도 제법 좋다. 거기다가 솔직히 말해서 얼굴도 좀 생길 만큼 생겼다. 흡혈귀는 다 이렇게 생겨먹었나. 좀 분한 마음에 스가와라가 오이카와의 정강이를 냅다 걷어찼다. 이번엔 비명소리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다녀올게. 집 잘 보고 있어.”

 

 

대충 가방을 챙겨들고 스가와라가 운동화를 구겨 신었다. 마룻바닥에 털썩 앉은 채로 오이카와는 손만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픽 웃음을 터뜨린 스가와라는 겨우 해가 뜬 아침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

 

 

 

 

 

 

 

 

오전 수업은 언제나 피곤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스가와라는 기지개를 켰다. 다행인 건 오후 수업이 없어 바로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다른 일정 때문에 조금 특별한 날이 되겠지만. 스가와라는 휴대폰을 꺼내 메신저를 확인했다. 저녁 때 봐요, 그리고 그 옆에 귀여운 이모티콘 하나. 전형적인 귀여운 타입의 여자였다. 잠시 나눈 대화를 다시 올려보면서 스가와라는 옅게 웃었다.

 

가방을 메고 나오니 바깥이 소란스럽다. 건물 앞에 사람이 우글우글한 게 연예인이라도 촬영하러 온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것에 특별히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가와라도 발끝을 들어 소란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중앙에 우뚝 솟은 갈색 머리카락은 분명히 스가와라가 알고 있는 사람의, 아니 흡혈귀의 것이었다.

 

 

……저게 왜 여기 있어?”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스가와라는 재빠르게 몸을 숙였다. 왠지 지금 오이카와에게 휘말리면 아주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소음으로 가득 찬 곳에 스가와라의 걸음소리 따위가 들릴 리는 없었지만, 스가와라는 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이동했다. 그러나 흡혈귀는 감각도 남달랐다. 그 많은 인파를 뚫고 정확히 스가와라의 뒤통수를 때리는 목소리는 때 아닌 반가움에 가득 차있었다.

 

 

스가!”

 

 

시끄럽던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싱글벙글 웃으며 경직된 스가와라에게 다가온 오이카와가 정말로 반가운 듯 얼어있는 스가와라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스가와라는 억지로 입 꼬리만 당겨 웃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시선이 스가와라를 향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시선의 촉 때문에 피부가 다 아렸다.

 

 

스가와라, 아는 사람이야?”

누구야, 이 사람?”

친구? 못 보던 사람인데.”

어떻게 아는 사이야?”

 

 

잠시 주위를 에우던 정적을 뒤로하고 스가와라의 머리 위로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곤란한 얼굴로 스가와라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나 통할 리 없었다. 정신이 사나워서 웃는 얼굴로 손사래만 치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순간 스가와라는 본인이 날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사방이 다시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옆에 서있던 오이카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스가는 바빠서 이만. 오늘 소개팅이 있거든.”

……이런 미친,”

안내 고마웠어.”

 

 

쌀 포대 매듯 스가와라의 몸을 어깨에 짊어지고 오이카와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뒤에 남은 무리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웅성거렸다. 이런 쪽팔린 작태로 캠퍼스를 돌아다닐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온갖 발악을 다 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인간인 스가와라가 오이카와를 힘으로 이길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빨리 안 내려놔? 죽을래?”

입이 험해, 상큼하게 생겨서.”

 

 

교문까지 다다르고 나서야 오이카와는 스가와라를 내려주었다. 그동안 오이카와의 눈에 띄는 생김새와, 그 어깨에 얹혀가는 스가와라의 눈에 띄는 모양새 때문에 온갖 시선을 다 받아야 했다. 부끄러움은 온전히 스가와라의 몫이었다. 바닥에 발을 디디자마자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야심찬 공격은 가뿐히 막혀버렸다.

 

 

학교까지는 왜 온 거야?”

오늘은 너 따라다닐 거라고 했잖아.”

옷은 어디서 났고?”

뭘 당연한 걸 물어봐? 샀지.”

……누구 돈으로?”

서랍에 돈 좀 있, , !”

 

 

스가와라가 목적 없이 묵묵히 주먹을 휘둘렀다. 예상치 못한 습격에 정신을 놓고 있던 오이카와는 결국 등짝을 몇 대 얻어맞았다. 남의 피 같은 돈을 멋대로 써? 스가와라는 웃는 얼굴로 오이카와에게 발길질을 했다.

 

 

그래도 뭐, 잘 샀네. 맨날 후줄근한 꼴 보기 싫었는데.”

……때릴 거 다 때려놓고 이제 와서?”

 

 

횡단보도에 서서 스가와라는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훤칠한 키에 몸만 좋은 게 아니라 옷을 고르는 센스도 제법 있다. 니트와 평범한 진으로 과하지 않게 입었지만 얼굴이 잘생겨서 솔직히 뭘 입어도 멋있긴 할 것이다. 스가와라가 웃으며 오이카와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오이카와가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길길이 날뛰며 폭력을 행사하던 사람이 갑자기 태도가 변하니 본인도 의아하긴 한 모양이었다.

 

 

밥은 먹었어?”

아니. 집에서 간단히 때우지 뭐.”

그러니까 키가 안 크지.”

또 맞을래?”

같이 먹고 들어가도 좋잖아, 이왕 나온 거.”

사람 음식은 입맛에 안 맞는다며?”

가끔 먹기도 하거든?”

아무튼 오늘은 안 돼. 이따 저녁에 약속 있다고 했잖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와 입씨름을 했다. 아침부터 피 한 통 든든하게 먹어서 딱히 허기가 지거나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자꾸 뭘 먹고 들어가자고 성화다. 결국 집 앞 골목길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계란빵 하나를 사서 들려주었다. 먹을 것으로 입을 막아두면 조용할 줄 알았지만, 오이카와는 그보다 딱 두 배 더 시끄러워졌다.

 

 

 

 

 

 

 

 

 

*

 

 

 

 

 

 

 

 

또래의 여성과 단 둘이 식사를 하는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언제나 이런 만남은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무게를 빼고 본다면 적당히 괜찮은 종류의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이런 부류의 만남을 그리 깊게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에게 실례를 범하는 언행도 한 적 없었다. 스가와라는 언제나 신중하게 선을 지킬 줄 알았다.

 

 

스가와라 씨는 보면 볼수록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평가를 곧잘 받을 수 있었다. 배려란 것이 몸에 배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억지로 잘 보이려 하지 않아 사람들은 스가와라를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 점에 여태까지 스가와라가 만났던 여성들도 반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거기서 끝이었다. 스가와라는 선을 잘 그었다. 그것은 사랑도 아닌 호감이란 묘한 감정의 단계에서는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따라서 스가와라가 연애란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었다. 스가와라도 그것에 딱히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다만, 오늘만큼은 신경이 좀 쓰이는 것이 있었다. 맞은편 자리에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스가와라의 이마를 뚫어버릴 듯 노려보고 있는 오이카와의 갈색 머리카락이었다. 그렇게 따라오지 말라고 말렸건만 오늘따라 이상한 고집을 부린다. 아직까지 별 일이 없으니 망정이지, 스가와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에 안고 가시방석 위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스가와라 씨?”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미안합니다.”

 

 

스가와라가 멋쩍게 웃었다. 어쩌면 오늘, 스가와라의 소개팅 역사상 최초의 오점을 남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흡혈귀 때문에. 스가와라는 다정하게 웃어보였다. 이마를 뚫을 듯 노려보는 시선이 한층 강해졌다.

 

 

, 이만 자리를 옮길까요?”

 

 

깨끗하게 빈 그릇을 보고 스가와라가 물었다. 여자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있느라 조금 구겨진 옷을 가다듬고 스가와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멀지 않은 곳에 따라서 몸을 일으킨 오이카와가 제법 건방진 얼굴로 스가와라를 보고 있었다. 약이라도 올리고 싶어 스가와라가 혓바닥을 내밀었다. 오이카와의 안면근육이 순간 경직되었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다가온다. 스가와라는 서둘러 등을 돌렸다.

 

 

저기.”

 

 

오이카와가 부른 것은 스가와라가 아니라 그와 마주보고 있던 여자였다. 크로스백을 가지런히 매고 스가와라의 뒤를 따르려던 그녀는 맑은 눈망울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웬걸, 금방 뺨이 복숭아 빛으로 물든다.

 

 

실례인 건 알지만,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 하지만…….”

 

 

그녀는 힐끔 스가와라의 눈치를 보았다. 이건 또 무슨 짓거린가 싶어 스가와라는 웃는 얼굴로 오이카와를 노려보았다. 그러건 말건 오이카와는 저 잘생긴 얼굴로 한껏 미소를 발사하면서 그녀를 꼬드긴다. 오래 살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지 저 얄미운 주둥이에서 나오는 말들이 다 청산유수였다. 아주 말로 땅을 사겠다.

 

 

이따가 연락해도 될까요? 솔직히……, 저 쪽보단 내가 더 나은데.”

……, 임마.”

 

 

스가와라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여자는 당황한 듯 보였다. 이쯤 되니 좀 억울하다. 욕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흔히 사람을 부르는 말에 저렇게까지 반응할 필요가 있나 싶다. 거기다가, 소개팅 상대를 눈앞에 두고 저렇게 대놓고 망설이는 건 또 어느 나라 법도란 말인가. 스가와라가 오이카와에게 주먹을 들어보였다.

 

 

내일 시간 어떠세요? 저런 놈보다는 저랑 같이 영화라도 한 편,”

죄송해요. 다음에 또 봐요.”

 

 

스가와라는 팔을 뻗어 오이카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의외의 행동에 놀란 오이카와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가 주었다. 말끔하게 계산까지 마친 스가와라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오이카와에게 말했다.

 

 

뭐가 어째, 이 자식아?”

사실인 것 같은데. 저 여자 눈엔 너보다 내가 낫나봐.”

 

 

오이카와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입을 삐죽이며 스가와라가 오이카와를 흘겼다. 쥐고 있던 오이카와의 멱살을 던지듯 내려놓고 스가와라는 큰 보폭으로 걸음을 옮겼다. 빈정상해서 도저히 말을 못 붙이겠다. 어차피 그 여자랑 딱히 잘해볼 생각으로 만나기로 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일을 망쳐놓을 건 또 뭐야.

 

 

스가, 화났어?”

 

 

오이카와는 끈질기기도 황소 같아서 끝까지 따라붙었다.

 

 

코우시, 같이 가.”

 

 

목소리를 조금 높여 이름을 부를 땐 또 작은 동물 같기도 하다. 스가와라는 힐끔 옆을 걷고 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딱히 제 죄를 뉘우치는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자기가 뭘 잘못했냐는 표정이다. 근데 신기하게도 그게 딱히 밉게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악의가 없는 순수한 표정에는 그저 그것을 장난으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힘이 있었다.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뭐가? 내가?”

너 말고 누가 있어?”

당연히 몰라야지. 내가 너보다 몇 년을 더 살았는데.”

 

 

또 그 얘기다. 그래봤자 생긴 건 딱 또래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스가와라는 픽 웃었다. 사람도 아닌 것에 짜증을 부려봤자 정신 건강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가와라가 투정을 부리듯 오이카와에게 말했다.

 

 

좋겠다, 잘나서. 아주 잘나신 흡혈귀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리고 꼭 그 여자한테 잘 보일 필요는 없잖아.”

 

 

오이카와가 손을 뻗어 스가와라의 정수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묘한 기분이 들어 스가와라는 얼른 그 손을 치워냈다. 오이카와가 씩 웃었다.

 

 

나한테는 네가 제일 예뻐.”

…….”

스가?”

 

 

스가와라는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살짝 낮게 깔린 듣기 좋은 목소리로 하는 말이 저런 간지럽고 구닥다리 같은 멘트라니. 스가와라는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엔 오이카와가 조금 상처 받은 것 같았다.

 

 

너한테 예뻐 보여서 뭐해?”

, 연애나 할까?”

미쳤어?”

, 인간들은 그런 거 잘하잖아.”

종족을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는 책에서나 봐.”

 

 

냉담한 목소리로 스가와라가 툭 쏘았다. 오이카와가 제자리에 우뚝 선다. 그러건 말건 무뚝뚝하게 걷던 스가와라는 한참이나 더 가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길바닥에 오이카와가 풀이 죽은 얼굴로 서있었다. 저거 또 왜 저래? 스가와라가 험악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왜 그래?”

……스가한테 차여서.”

미친 소리 그만하고 좀.

나랑도 하자.”

?”

소개팅.”

 

 

그 말에 스가와라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뭘 잘못 먹었나. 아니면 혹시 흡혈귀도 인간의 질병에 걸릴 수 있는 걸까. 손을 뻗어 이마를 짚으니 오이카와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파서 그런 거 아니라고 오이카와가 소리쳤다.

 

 

됐고. 소개팅이 별 거야? 그냥 같이 밥 한 끼 먹는 거지.”

뭐야. 그럼 너랑 나랑은 맨날 소개팅 하는 거?”

말이 또 왜 그렇게 되는데?”

매일 저녁은 같이 먹잖아.”

내가 보기엔 네가 먹는 건 밥이랑 거리가 아주 멀거든?”

소개팅 그만큼 했으면 이제 슬슬 진도 좀 나가야 하는 거 아냐?”

 

 

오이카와가 은근슬쩍 스가와라의 어깨에 팔을 걸친다. 스가와라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오이카와는 사람이 아니라 늘 상식 밖의 범주에서 스가와라를 대했다. 그래서 이렇게 종종 상대를 당황하게 할 만한 말들을 줄줄 늘어놓는다. 진심이건 아니건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좀 풀렸다. 그게 누구든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아무튼 기쁜 일이니까.

 

 

 

 

 

 

 

 

 

*

 

 

 

 

 

 

 

Comment

- 행주님(@0320_HQ) 달성표 보상입니다. //ㅁ//

- 가볍고 포카포카한 글은 원래 잘 못 쓰는데 나름 노력했습니다(?)

- 행쥬님 제가 많이 죠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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