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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운 대학생 동거물입니다. 의불 주의... 캐붕도 주의....
- 치자피즈님이 주신 '천둥번개, 비 오는 날' 키워드로 썼습니다.
- 약 5000자의 짧은 조각글이에요.
그런 날
오이카와 토오루 × 스가와라 코우시
For. 치자피즈님
w. Ryria
오늘은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진짜 이 재수 옴 붙은 날의 시작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다. 개강 파티를 한다고 기껏 사람을 불러 모으더니 모인 사람은 고작 일곱이었다. 파티라고 하긴 영 초라한 규모였지만 주동자들은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이나 먹자고 무작정 고깃집으로 향했었다. 내일 1교시라 많이는 못 먹겠다는 내게 자꾸 빼지 말라고 꾸역꾸역 술을 먹이더니, 기어코 내가 필름이 끊길 때까지 권주가 계속됐다. 까맣게 덧칠된 기억 속에 드문드문 나를 데리러 온 오이카와의 얼굴이라든지, 목소리 같은 게 남아있긴 했지만 내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겨우 식별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죽어라 마셨으니 다음 날 이상이 없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1교시는 9시에 시작이었고 내가 눈을 뜬 것은 10시 5분 전이었다. 1교시인 것도 모자라 6시간 내리 수업이 있던 날이라 처음 정신을 차리자마자 든 생각은 그냥 죽을까, 딱 그거였다. 2교시는 차마 놓칠 수 없어서 머리도 못 감고 얼굴에 대충 물만 발랐다. 술에 떡이 돼 들어왔으니 입에서 냄새라도 날까 서둘러 양치질도 했다. 옷을 대충 꿰어 입고 어제 맸던 가방만 들고 냅다 학교로 튀었다.
겨우 2교시는 세이프했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자취를 한다는 것은 꽤 유용했다. 그러나 2교시에서 만난 동기에게 내가 놓친 1교시 수업 오리엔테이션에 대한 내용을 전해 들었을 때에는 머릿속에 휴학 두 글자가 둥둥 떠다녔다. 원래 출석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교수님이긴 한데, 첫날부터 결석하는 놈들은 이 수업에 충실할 생각이 없는 놈들이므로 오늘 결석자에 한해 수업태도 점수를 확 깎아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 다시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왜 깨워주지 않았느냐는 분노에 찬 질문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지만 차마 전화라도 해서 따질 수가 없다. 어제 분위기에 휩쓸려 정신줄 놓고 부어라 마셔라 했던 내 탓이었다.
그래서 그뿐이었다면 다행인데 오늘 나를 찾아온 불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3교시 수업엔 강의실을 잘못 찾아서 온 건물을 와다다다 뛰어다녀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도착한 강의실엔 하필이면 에어컨이 고장 나서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수업을 들어야 했다. 아무튼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나는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급하게 나오느라 집에 지갑을 두고 와서 동기의 돈을 좀 빌렸다. 다행이 도시락을 먹는 도중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겨우 한숨 돌리기도 잠시, 새로 산 교재들을 사물함에 보관하려고 그 앞을 찾았을 때, 나는 또 쎄한 느낌을 받았다. 늘 자물쇠로 잘 잠겨있던 사물함 걸이에 아무것도 없었다. 싸구려 번호 자물쇠가 자리를 비웠다. 이게 발이 달렸나? 나는 설마하며 문을 열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교재들, 학교에서 쓰던 여러 가지 물품들, 화일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다가 제일 위에 자물쇠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물함을 같이 쓰는 놈이 제대로 잠그고 가질 않은 모양이다. 없어진 게 없는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나는 오늘의 내 운을 절대 믿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 태블릿…….”
좀 예전 모델이긴 한데,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큰 맘 먹고 산 태블릿이 자리에 없었다. 안 그래도 나쁜 일만 겹쳐서 기분이 첩첩산중 저기압인데 이번엔 웃음밖에 안 나왔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는가 싶다. 경비실에 가서 CCTV라도 보여 달라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대자보를 붙여서 빨리 내 태블릿 가져간 놈 제자리에 돌려놓으라고 살벌하게 경고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갑자기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죽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눈물 콧물 쏙 빼가며 펑펑 울고 싶었다.
오이카와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한참이나 이어지다가 결국 끊어졌다. 오이카와의 수신은 없었다. 나는 오이카와가 일주일 전쯤에, 오늘 학교대항 경기가 있다고 얘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망할, 도움이 안 돼. 나는 부득부득 이를 갈다가 혀를 씹었다. 울고 싶었는데 진짜 눈물이 났다. 찡해진 코끝을 부여잡고 나는 훌쩍 했다. 올해 겪을 불행을 오늘 다 겪고 있는 것 같다.
일단 나는 경비실로 가서 사정을 말했다. 이러이러해서 CCTV를 보고 싶다고 말하니 그래도 쉽게 보여주셨다. 감히 내 태블릿을 훔쳐간 괘씸한 도둑놈이 누군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화면을 바라보는데 전화가 왔다. 나랑 사물함을 같이 쓰는, 내 태블릿 분실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놈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불쑥 화를 냈다.
“이 개자식아, 사물함 똑바로 안 닫고 다녀?”
─뭐야, 무슨 일이야?
“뭐야, 무슨 일이야? 무슨 일? 네가 사물함 그냥 열어놓은 바람에 내 태블릿이 실종됐다고!”
잠깐 저쪽이 조용하다. CCTV를 보면서 씩씩거리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난감하게 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내가 잠깐 빌렸는데. 너무 급해서 말도 못했다, 야. 지금 얘기하려고 전화한 건데…….
“목 닦고 얌전히 기다려라 개새끼야.”
나는 반드시 이 새끼를 죽이고 세상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다.
태블릿 사건은 일단 무사히 일단락되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내게 남은 일은 감히 남의 것을 가져간 내 사물함 룸메이트의 목을 조르는 것뿐이었다. 괜히 호들갑을 떨었다고 경비아저씨에게 죄송하다며 여러 번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나는 무겁게 늘어지는 걸음을 옮겼다. 피곤하다. 개강한 게 엊그젠데 벌써 방학이 간절했다.
얼른 집에 가서 쉴 생각이었다. 대충 샤워하고, 에어컨을 틀어놓고 이불속에 들어가 한참을 꼼지락거리다가 잠에 들 생각에 그래도 나는 잔뜩 들떠있었다. 그래, 아주 거지같은 하루를 보냈어도 그 행복감에 젖게 된다면 다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꽈광.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건물을 채 일 보 나가기도 전에 하늘이 부서지는 소리에 놀라 구름에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짝 말라있던 아스팔트 바닥이 순식간에 어둠을 집어삼킨 듯 시커멓게 변했다. 무언가 번쩍하더니 다시 또 하늘이 세게 울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주위에 바닥을 뚫을 기세로 내리는 빗소리만 그득하게 찼다. 나는 망연하게 그 자리에 서있었다. 바깥을 다니던 사람들이 급하게 여기저기로 뛰어다닌다. 나는 우산이 없었다. 지갑도 두고 나왔는데 우산을 챙겨 나왔을 리 만무했다.
결국 나는 발걸음을 돌려 라운지에 착잡한 표정으로 앉아야 했다. 지갑이 없으니 우산을 살 수도 없었고,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맨몸으로 맞고 지나가기엔 퍼붓는 비의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벌써 내리막길에는 폭포처럼 물결이 생겼다. 나는 하는 수없이 다시 오이카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지루하게 이어지다가, 결국 내가 기다리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다이얼을 또 눌렀다. 마침 번개가 번쩍했다. 비구름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지 천둥이 금세 따라붙었다. 귀를 찢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사방이 고요해진다. 일순 정적이 이어지던 공간에 다시 파도를 닮은 소리가 들어찼다.
“진짜 나한테 왜 그래……?”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그대로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정확히 반으로 쪼개진 휴대폰 액정이 유난히 처량했다. 그걸 주워들고 손바닥으로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다가 폭죽 터지듯 서러움이 터졌다. 오늘 액이 낀 모양이다. 아무래도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귀신이 내 등 뒤에 붙어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많은 일들이 단 하루 만에 일어났음을 설명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가 없다. 나는 딱 울고 싶은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가방을 맸다. 비를 맞든 말든 당장 집으로 달려갈 셈이었다.
무작정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정수리와 어깨를 때리는 빗방울은 굵고 거셌지만 달릴 힘은 없었다. 발걸음을 직직 끌어 억지로 뛰는 시늉을 했지만 이상하게 속도가 나지 않는다. 얼굴을 뒤덮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냥 계속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 채였다.
이게 무슨 청승인지. 이제 웃음이 다 났다.
비가 거짓말처럼 훅 그쳤다. 거멓게 낀 먹구름 대신 어두운 그림자가 내 얼굴을 가렸다. 나는 쫄딱 젖은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오이카와가 두 눈에 걱정을 덕지덕지 달고 서있다.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왔는지 따뜻한 숨이 가빴다. 그 반반한 얼굴을 보고 나는 그만 왈칵 울음이 터졌다. 오늘 하루 종일 혼자 견뎌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이 망할 자식아, 전화는 왜 안 받아!”
그렇게 말하고 나는 오이카와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내 무게에 잠시 휘청한 오이카와가 뭘 안다고 내 등을 부드럽게 다독였다. 정수리에 따뜻한 습기가 어렸다. 오이카와에게서는 물곰팡이 냄새가 아니라 짙은 땀 냄새가 났다.
“미안해. 오늘 좀 정신이 없었네. 부재중 보고 얼른 달려온다고 왔는데.”
“너 내가 오늘 얼마나 거지같았는지 알아? 바빠도 그렇지 어떻게 한 번 연락을 안 하냐고. 늦잠자서 수업 늦고 지갑도 안 가져와 우산도 없어, 핸드폰도 깨먹었는데 망할 토오루는 전화도 안 받아!”
“그래서 이 빗속을 맨몸으로 뚫으려고 나오셨다? 코우시, 드라마 너무 많이 봤어.”
“지랄할래?”
오이카와가 소매로 내 얼굴을 박박 문질렀다. 온갖 물이란 물은 다 범벅이 돼서 꼴이 형편없을 텐데 오이카와는 마냥 배시시 웃고만 있다. 잘생긴 얼굴을 빤히 노려보다가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오이카와에게 안겼다. 원래 이렇게 어리광이 많은 건 아니지만─평소에는 오이카와의 칭얼거림이 훨씬 심하다.─ 오늘은 좀 기대고 싶다. 심적으로도 하루 종일 괴로운 날이었다. 내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오이카와도 더 이상 깐족대지 않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와르르 쏟아졌던 날, 우리는 그 비를 커튼삼아 우산 속에 한동안 갇혀있었다. 하루가 온통 거짓말 같던 날, 내 하루의 마지막은 제일 거짓말 같은 실재였다. 몸속에서 단단히 응어리졌던 무언가가 팍 터진다. 그러더니 빗물과 함께 사르르 녹아내린다. 몸이 녹진했다. 습기를 머금어 흐물흐물해진 몸이 멋대로 오이카와에게 달라붙었다.
오늘은 천둥이 쳤다. 번개도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쫄딱 젖었고 나 때문에 오이카와도 젖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
진짜 의미불명이네요 뭐라도 써보자 싶어서 쓴 건데 아무말 대잔치(
키워드 주신 치자님께 감사...합니다....(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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