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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 이선희 - 여우비 (듣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비늘무덤 下
카와니시 타이치 × 세미 에이타
w. Ry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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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오후 업무를 마치자마자 나는 낯선 이와 저녁을 먹기 위해 시내로 향했다. 정장은 너무 딱딱해 보인다며 퉁을 놓는 비서의 말에 조금 가벼운 차림으로 회사를 나섰다. 이번 선은 아버지의 절친한 친우가 주선해준 거라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금만 참으라며 비서는 사족을 붙였다. 어른들은 따분했다. 당사자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멋대로 짝을 지어버리곤 했다.
그녀는 일전에 한 번 만났던 사람이었다. 마츠모토 가의 차녀로 순수미술을 전공해 개인전도 연 경력이 있는 수준급의 화가라고 했다. 그래봤자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온실 속 화초일 뿐이다. 나와는 많이 다른 환경의 사람이었다. 정답게 저녁 식사를 하고,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데이트를 즐기다가 헤어질 것이다. 그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체할 것 같은 식사가 이틀 연속 있다 보니 이제는 속이 쓰렸다. 티는 내지 않았다. 소화가 잘 안 된다고 얘기했더니 그녀는 조금 걷자고 했다. 마침 근처에 갤러리도 있고, 수족관도 있다며 가볍게 구경이나 하자고. 딱히 거절할 구실이 없어 나는 그러자 했다. 그러다가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화제가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참, 카와니시 씨도 들었어요? 여기 수족관에서 얼마 전에 바다 건너에서 인어를 하나 받아왔는데, 조만간 경매에 부칠 거래요. 괜찮으면 같이 구경 갈래요?”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내 기억 속에 인어는 인간을 뛰어넘는 어떤 존재였다. 그는 아주 아름답고 상냥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하는 인간과 다르게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초월적인 존재였다. 나에게 그들은 인간에 의해 포획되고 팔려가고, 단순히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용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인어의 개체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나는 어릴 때 만났던 세미의 말로부터, 그들은 본래부터 존재했지만 이제야 인간들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라고 유추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바닷가를 배회하는 인어의 수가 늘었다. 인어가 그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홀려 바닷물에 빠뜨려 죽인다는 낭설도 마구잡이로 퍼졌다. 덕분에 인어를 잡아 전문적으로 사고파는 브로커들도 생겼다. 지느러미의 빛깔이 아름다운 인어들은 주로 관상용으로 팔려갔고, 괴악한 취향을 가진 몇몇 사람들은 인어를 먹기도 했다. 근래에 인어를 보호해야 한다는 환경 단체의 목소리가 커지고는 있지만, 아직 그런 암거래들을 막을 마땅한 법이 없다는 게 틈이었다. 인어는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거래됐다. 어디에서는 죽고, 어디에서는 전시되었다.
“카와니시 씨?”
“……예?”
나는 문득 내 품속에 있는 비늘의 주인을 떠올렸다. 그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시간마다 빛깔을 달리하는 아름다운 지느러미와 유난히 희던 몸, 특이한 머리색과 투명한 눈동자를 가진 인어였다. 얼굴을 그려내라 하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데, 부분적인 특징들은 명확하게 기억했다. 내려오는 전설처럼 나는 아마도 그에게 홀린 게 아닐까.
“뭐예요, 저랑 있는데 다른 생각하시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그녀를 따라 걷다보니 수족관이었다. 저녁이 한참이나 지난 시각이라 수족관 내부는 한적하다. 그녀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무미건조한 수다가 썩 듣기 싫지는 않아 그냥 그대로 뒀다. 나는 그보다 주위를 감상하기에 바빴다. 물이다. 이곳은 작은 바다였다.
“카와니시 씨는 바다를 좋아하시는 모양이에요.”
“어릴 때 빠졌었거든요.”
“물에?”
“네.”
그럼 보통 싫어하지 않아요?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그러게요. 나는 싱겁게 대꾸했다.
폐장 시간이 가까웠다. 덩달아 출구도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조금 긴장을 풀고 걸었다. 마지막 관은 새카만 암실이었다. 조명으로 켜둔 퍼런빛이 어두운 방 밖으로 비집고 나왔다. 옆을 지키고 있던 수족관의 관리인이 흐뭇한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어두우니 조심하세요. 어두운 것을 좋아하는 놈이거든요. 나는 그것에 대고 콧방귀를 꼈다. 그러면 눈이 아플 정도로 세게 켜놓은 파란색 조명부터 좀 끄지. 나는 파란빛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수초도, 산호도, 어떠한 장식도 없는 그저 새파란 수조 안에는 거대한 물고기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세상에, 인어잖아요?”
그녀가 탄성을 질렀다. 인공으로 만들어낸 푸른빛 안에 갇혀있는 것은 인어였다. 지느러미는 아주 짙은 파란색으로, 조명이 닿을 때마다 얼핏 금빛을 내기도 했다. 새하얀 피부, 특이한 머리색과 투명한 눈동자는 모두 지느러미와 같은 푸른빛이었다. 창백했다. 나는 느리게 눈을 끔뻑였다. 마침내는 수조 바닥에 앉아있는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귀가 먹먹하게 굳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신이 나서 떠드는 여자조차 벙어리가 된 듯 했다. 나는 제자리에 얼었다. 나를 알아본 그것도 울먹거리는 얼굴로 멈춘 채였다.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날로부터 열두 해가 지났지만, 그래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신기하리만치 내 모든 감각이 그것을, 세미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소리 내지 않았음에도 그는 마치 알아들은 듯 몸을 일으켜 나를 향해 헤엄쳤다. 그가 휘두른 지느러미에 하얀 공기방울이 생겼다가 스러졌다. 곧 사람의 손과 똑같이 생긴 것이 수조에 닿는다. 툭 불거진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온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세미는 성체가 되었다. 조명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의 색이 조금 짙어져 있었다. 지느러미는 그때보다 커졌다. 하얀 나신도 조금 더 단단해져 있었다.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세미는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왜 여기에 있어? 혹여 대답이 들려올까 속으로 그렇게 묻곤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옆에서 걷던 여자가 의아한 목소리로 왜 그러느냐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다시 그녀를 따라 걸었다. 시선을 돌려 출구로 향했다. 쿵, 그가 주먹으로 수조를 쳤다. 가벼운 진동이 인다. 나는 결국 그를 뒤로 하고 수족관을 나와야 했다.
이후부터 나는 그녀와의 데이트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밖으로 나온 뒤부터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온통 세미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단단한 비늘을 만지작거렸다. 날카롭지만 가장자리가 뭉툭한 그 비늘은 세미의 것이었다. 세월에 잠시 그를 잊었지만 나는 결국 그를 기억했다.
“……마츠모토 씨. 미안하지만 데려다줄 수 없을 것 같아요. 먼저 가세요.”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다. 손에 쥔 비늘 끝이 악력에 조금 바스러졌다.
* * *
인어는 전문 수집가들 사이에 비싼 가격으로 팔렸다. 흔히 경매에 물품으로 나와 주로 최상위 계층의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곤 했다. 인어는 상한가가 없었다. 부르는 게 값이었으니 전 세계적으로 인어 포획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나는 그것을 그리 좋게 보고 있지는 않았다. 어쨌든 인어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만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경매장에는 직접 갈 수 없었다. 나는 이미 2주일 치의 스케줄이 모두 잡혀있었고 뭐 하나 만만한 게 없었기 때문에 나를 대신해 비서를 보냈다. 대신 텍스트로 진행 상황을 일일이 보고하라고 말했다. 부서 사람들과 회의를 하는 중에도, 결재를 하는 중에도, 심지어 식사를 하는 중에도 나는 비서가 보낸 것들을 꼼꼼히 보았다. 마지막 즈음에는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오늘 마지막 경매 물품인 중형종 인어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적힌 종이 한 장이었다. 역시나 이름은 없다. 대신 특이사항에 물속에서 우는 소리가 그리 듣기 좋지 않아 발성기관을 통째로 제거했다고 적혀있었다. 어차피 보기에만 좋으면 되므로. 나는 부득 이를 갈았다.
세미는 나를 보자마자 울었다. 사실 그는 물속에 갇혀있어서 그게 눈물인지 그가 입으로 뱉어낸 하얀 물거품들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세미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울고 있었다. 두꺼운 수조의 유리벽 위에 세미의 손바닥이 짓눌렸다. 나는 천천히 그 손가락에 닿았다. 그러나 느껴지는 것은 딱딱하고 차가운 유리벽의 촉감뿐이었다. 내가 팔을 뻗어도 세미는 여전히 물속에 갇혀있었다. 지금 당장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꼭 내가 데리러 올게.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읊조리듯 얘기했다. 알아들은 것처럼 세미는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보았다. 열다섯 살의 여름, 세미를 처음 만났던 때처럼 그는 하염없이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두고 나는 수족관을 나와야 했다. 그동안은 느낄 수 없었던 무력감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한 시간 후에는 낙찰이 끝났다는 보고와 함께 금액이 적힌 문자가 왔다. 숫자를 세는 데에 익숙해진 눈은 금방 공이 몇 개나 붙었는지 읽어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리한 금액이지만 내 돈으로 충분하다. 세미를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는 비가 줄줄 내렸다. 습기를 머금어 꿉꿉한 공기에 나는 한참이나 회사 앞에 서있었다. 우산이 없다. 손바닥을 열어 낙하하는 물방울 몇 개를 받아내다가, 나는 금방 빗속으로 달려들었다. 비는 싫지 않다. 온몸을 휘감는 차가운 물의 감각은 여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 * *
“다녀왔어.”
바쁜 일상 속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무려 열두 해를 지나 세미를 다시 만났고, 그래서 늘 텅 비어있던 내 아파트에 인사를 건넬 사람이 생겼다. 원체 집에 잘 들어가지 않는 편인데, 요즘은 무리를 해서라도 집에 돌아오곤 했다. 이 집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어서 세미가 곧잘 심심해했기 때문이었다.
세미가 내 집에 오고 처음 며칠은 혼자 분주했다. 집에 둘 대형 수조를 주문 제작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고, 몇 년을 그 자리에 있었던 가구들도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러나 결국 집에는 말끔하고 예쁜 수조가 들어오지 못했다. 세미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욕조는 아무래도 작아서 불편할 것이라 얘기했더니 세미는 그래도 여기가 좋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상상도 하지 못할 시간을 좁은 수조 안에서 갇혀 지내야 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세미는 내 방 침대 옆에 있었다. 그래서 침실에는 늘 커튼을 쳐뒀다. 세미는 원래 깊은 심해 속을 헤엄치는 인어라 어둠에 더 익숙하다고 했다. 세미와 밤에 함께 잠들고 아침에 함께 눈을 뜨는 일이 제법 즐거웠다. 덕분인지 밤에 잠을 설치는 일도 전보다 훨씬 줄었다. 세미는 오랫동안 인간의 손을 탔지만 그가 몸에 품은 특유의 바다냄새는 여전한 채였다.
방문을 열자마자 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웃음을 머금고 전등을 켰다. 하나를 일부러 빼놓아 불빛은 연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세미는 뭘 들고 있었다. ‘어서와’라고 적힌 코팅된 종이였다.
세미는 인간의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글은 쓸 줄 몰랐다. 나는 세미에게 글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말을 알고 있으니 배우는 것은 빨랐다. 글을 배운 이후부터 세미 얼굴에는 제법 생기도 돌았다. 나를 보고 활짝 웃는 얼굴은 성체가 된 지금도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오늘은 뭐했어?”
재킷을 벗으며 묻는 말에 세미는 후다닥 무얼 욕조의 밑으로 숨긴다. 일기를 썼구나. 나는 그렇게 짐작했다. 넥타이도 끌러 침대 위에 던져두고 나는 세미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그는 내 뺨을 보드랍게 쓰다듬었다. 나는 섭섭한 얼굴을 하고 그에게 물었다.
“정말 안 보여줄 거야?”
세미는 확고했다. 아주 확고한 의지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글을 배우면서 세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궁금해서 거기에 뭘 쓰냐고 물었었는데, 나에 대한 것을 쓴다고만 했다. 보여주기 싫어해서 나도 딱히 보려고 노력하진 않았다. 나는 다만 세미가 수족관에 있었던 때보다 좋아 보여 다행이라고만 여겼다. 세미도 내 곁을 불편해하지 않는 듯 했다.
밥 먹었어?
세미가 글자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못 먹었어. 우는 소리를 했더니 세미가 사색이 되어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게 사랑스러워 나는 욕조에 턱을 괴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손을 뻗어 세미의 뺨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귀 뒤에 있는 아가미가 손끝에 닿았다. 물속이 아니었지만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불편하지 않아?”
어서 밥부터 먹어.
내 질문엔 대답도 않고 세미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세미의 지느러미 색은 많이 옅어져 있었다. 그것에 대해 내가 물었을 때에 세미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매일매일 새로 물을 받아주긴 했지만 혹시 바닷물이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바닷물을 퍼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 일로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세미가 단박에 거절할 것을 알고도 나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세미, 수조로 옮기는 건 어때?”
그랬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도리질한다. 그럴 줄 알았다.
“욕조는 너무 작아. 수조로 옮기면 아예 공급 장치를 따로 만들 수도 있고,”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세미가 손바닥으로 내 입을 꾹 틀어막았다. 강력한 거부 의사였다. 나는 양손을 어깨 위로 들어 포기한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제야 물러난 세미가 또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다.
너랑 대화할 수 없잖아.
“그거야 물속에서도 써지는 펜을 사면,”
만질 수 없잖아.
“…….”
나는 타이치 옆에 있고 싶어.
말문이 막혔다. 세미는 여전히 투명한 동공으로 나를 담고 있었다. 오로지 나만 바라보는 그 시선에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나는 축축하게 젖어있는 세미의 어깨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너른 바다를 헤엄치며 살아야하는 네게 혹시 내가 아주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바다로 갈래?”
내 품에서 그가 고개를 저었다. 함께 움직인 머리카락이 턱 언저리를 간질였다. 나는 드러난 이마 위에 입을 맞췄다. 그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냄새가 났다.
나는 다만 두려웠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네가 억지로 자신을 붙들고 혼자 괴로워하고 있을까봐. 드넓은 바다의 품으로 도망치지 못하고, 내가 잡으면 잡는 대로 그저 그렇게 있는 건 아닐까 늘 두려웠다. 인어에게도 수명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어느 정도인지 결국 네게 묻지 못했다.
“……조금만 기다려. 밥 먹고 올게.”
그렇게 말하고 나는 방을 나섰다. 널찍한 침실 안에 세미는 혼자 남았다. 언젠가 그렇게 될까봐 겁이 났다. 아니, 세미가 없는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질까 무서웠다.
* * *
우리는 열두 해를 지나 다시 만났지만 단 둘이 있을 때에는 늘 어릴 때와 같았다. 옛날보다 훌쩍 자라 세미도 나도 훨씬 커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곧잘 옛날 얘기를 꺼내며 놀았다. 어린 시절 나를 구해주었던 고래, 자갈이 가득 깔린 바닷가, 덩그러니 솟아있던 산호바위, 해가 질 때면 어스름하게 물들던 주홍빛 노을……. 일주일뿐이었지만 우리에겐 남은 것이 많았다.
세미는 성체가 된 직후에 인간들에게 붙잡혔다고 했다. 고깃배에서 추락해 죽을 위기에 처한 뱃사람 하나를 구해줬는데, 얼마 후에 동료들을 데려와 세미에게 그물을 던졌다고 했다. 나는 화를 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믿는 게 아니라고. 그러자 세미는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타이치도 믿으면 안 돼? 그 물음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세미는 기분이 좋은 듯 그런 나를 보고 깔깔 웃었다. 물론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잡히고 난 후에 이리저리 팔려 다녔다고 했다. 지느러미가 예쁘다며 비늘을 강제로 뜯어간 상인의 이야기, 좁은 수조 속에 갇혀있는 게 불안하고 싫어서 밤새 울었더니 그길로 수술대에 오른 이야기, 유럽 어디 수족관에서 만난 또 다른 인어의 이야기까지 세미는 느린 손으로 정성스레 글씨를 써 내게 보여주었다. 때로는 슬픈 얼굴로, 언제는 즐거운 표정으로 세미는 새벽이 다 가도록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미의 표정을 따라했다. 어느덧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세미가 웃고 있으면 나도 웃음이 났고, 그가 슬픈 표정을 할 때엔 나도 눈물이 났다.
회사에서도 틈만 나면 인어에 대한 모든 것들을 알아보았다. 인어는 바닷물에 살기 때문에 환경이 바뀌면 생체 리듬 자체가 무너진다는 글을 보고는 누가 뒤통수를 때린 것처럼 머릿속이 얼얼했다. 지느러미는 성체가 되기 전에는 다칠 경우 재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린 인어들을 다룰 때에는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 문구도 보았다. 그러나 인어의 수명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없었다. 인어가 어디서 태어나는지도 마찬가지였다.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나는 더 바빠졌다. 하지만 집에 세미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즐거울 수 있었다.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내 변화를 눈치 챈 듯 했다. 비린내가 난다든지 요즘 행복해 보인다든지 하는 평가를 들으면 나는 괜히 주머니 속의 비늘을 만지작거렸다.
며칠이 더 지났다.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재킷부터 벗어 침실로 향했다. 세미는 물속에 푹 잠겨있었다. 때문에 소리도 듣지 못한 모양이다. 눈을 감고 물 안에서 아가미로 호흡하고 있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그 위를 바라보았다. 몸에 꼭 맞는 작은 욕조에 누워 그는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지느러미를 지켜보다가 나는 아예 그 옆에 눌러앉았다. 인기척을 느끼고 세미가 반짝 눈을 떴다.
오늘은 일찍 왔네.
시간을 확인하고 세미가 반가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일이 좀 일찍 끝났어. 나는 피곤한 얼굴로 욕조에 턱을 괴고 세미를 바라보았다. 젖은 손바닥이 내 얼굴을 만진다. 나는 그 손을 쥐고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세미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오늘 씻는 날이야.”
소매를 걷고 나는 세미의 등을 안아 당겼다. 이제는 익숙하게 세미가 내 목을 감싼다. 물 밖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세미는 늘 내게 안겨서 다녔다. 혹여 수분이 마를까봐 나는 세미를 끌어안고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욕실의 욕조는 침실에 있는 것보다 훨씬 컸는데, 그래서 세미는 지금 시간을 좋아했다. 목욕을 핑계로 내가 자기를 만지는 게 좋다고 했다. 그 말에는 내가 더 당황했다.
목욕이라고는 하지만 거창한 건 없었다. 침실이 아니라 욕실에서 세미와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세미의 몸에는 곳곳에 비늘이 돋아있기 때문에 인간과 같은 목욕의 과정이 불필요했다. 단지 나는 세미가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숨통을 틔우길 바랐다. 그래서 온도도 맞춰주고 소금도 녹였다. 별로 효과는 없는 것 같았지만.
“색이 점점 빠지네.”
지느러미를 보고 내가 운을 뗐다. 세미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속에서 홱 몸을 뒤집었다. 인간과 똑같이 생긴 견갑골 사이로 움푹 들어간 허리가 지느러미까지 이어졌다. 나는 거기서 조금 이질적인 것을 발견했다. 팔을 뻗어 세미의 등허리를 어루만졌다. 다른 곳과 다르게 비늘 대신 빨간 딱지가 앉아있었다. 아무래도 비늘이 떨어져나간 자국 같았다.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거, 왜 그래?”
비늘.
그제야 나는 회사에서 보았던 글을 떠올렸다. 성체가 되기 전에는 회복 능력이 없어 손상된 조직이 재생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가 어릴 적, 세미가 내게 주었던 비늘이 떨어진 자국이었다. 나는 조금 얼굴을 찌푸렸다.
“아팠겠다.”
어린 인어의 비늘은 상하지 않아.
“그런 것 같아.”
그런데 네 비늘은 왜 상하고 있지?
그렇게 물으려던 말을 결국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처음 수족관에서 보았을 때보다 세미의 지느러미는 색이 바래있었다. 바래지 않는 것은 세미가 어릴 때에 나에게 준 비늘 한 조각뿐이었다. 그것만 영원의 시간 속에 갇혀있는 듯 했다. 나는 조금 침잠하는 기분으로 세미의 머리카락을 손에 담았다. 그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 예감했지만 나는 끝내 너에게 묻지 못할 것이다. 확답을 듣는 것보다 두려운 일은 내게 없었다.
돈이 많아도 이 일본에서 이름만 대면 모두 알 유명세를 가지고 있어도 결국 나에게는 하나 쓸모없는 것이었다. 무엇으로도 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너는 내 옆에서 웃었다. 내 곁이면 파도치는 바다가 없어도 그저 행복하다 말했다. 그런 네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옆에 있는 것, 그뿐이었다.
울지 마.
세미가 내게 보여준 삐뚤빼뚤한 글자였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게 우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말없이 세미의 얼굴을 당겼다. 반쯤 열린 입술에 나는 홀린 것처럼 키스했다. 그래, 나는 인어에게 홀린 지도 몰랐다. 그의 입안에서 바다냄새가 났다.
* * *
아침부터 찌뿌둥했다. 악몽을 꿔서 그랬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끔찍한 꿈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덕분에 회사에서 내내 몸이 아팠다. 어깨가 쑤시고 허리가 욱신거렸다. 꿈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도 생생한 역함에 화장실도 수십 번을 갔다. 결국 나는 조퇴를 했다. 아픈 것은 반쯤 핑계였고, 몸살이 좀 난 김에 집에 가서 세미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받고 싶었다. 가는 길에 약을 지어가라던 비서의 말보다 내게는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세미는 과일을 좋아했다. 물렁한 복숭아나 바나나 같이 달고 부드러운 과일을 특히 잘 먹었다. 가는 길에 차에서 내려 약 대신 과일을 조금 샀다. 집에 가는 길이 이렇게 설레고 즐거운 것은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없던 경험이었다. 누군가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다녀왔어.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재킷을 벗어 소파에 대충 던져두고 나는 곧장 침실로 향했다. 어두운 실내에 불을 켜자마자 반가운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미는 눈을 감고 욕조에 늘어져있었다. 과일 봉투를 부스럭거리며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내가 오기 전까지 줄곧 잠을 자곤 했다.
“나 왔어.”
꽉 닫힌 눈꺼풀이 미동도 없이 멎어있다. 나는 손을 뻗어 세미의 머리카락을 몇 번 쓰다듬었다. 깨지 않는다. 귀 뒤의 아가미가 눈에 밟혔다. 물 밖에서는 쓸모가 없는 기관이지만 줄곧 빠끔거리던 게 생각이 났다. 그러나 내 손길에도 그것은 멈춘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
“세미.”
그제야 나는 발에 채인 노트를 발견했다. 누런 종이 위에는 정성스럽게 보드마카로 눌러 적은 한 마디 문구가 담겨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봉투를 떨어뜨렸다. 알이 굵은 복숭아 몇 개가 굴러 나왔다. 동시에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안해, 타이치.
“세미, 나 왔어. 눈 좀 떠봐.”
나는 점점 더 절박해졌다. 내 기대와 다르게 세미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코끝에 손가락을 댔다. 여리지만 그는 아직 호흡하고 있었다. 나는 더욱 절망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아니기에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국내에 내로라하는 인어 연구원에게 백방으로 연락이라도 취해야 할까. 나는 딱 죽고 싶은 마음으로 세미를 안아 올렸다. 욕조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에 섞여 후두둑 무언가가 함께 낙하했다. 물 위에 동동 뜬 것은 빛깔을 잃은 비늘들이었다.
나는 당장 집을 박차고 나왔다. 혹시 가는 길에 마르지 않을까 양동이에 물도 담아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뒷좌석에 세미를 누이고 나는 곧장 운전대를 잡았다. 바다로 갈 생각이었다. 시내 한복판에서 바다까지, 그렇게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지만 당장 다른 대안이 떠오르질 않았다. 운전하는 중에 전화가 몇 번이나 울렸다. 그러나 하나도 받질 않았다. 내 신경은 온통 세미에게 쏠려있었다. 그는 그렇게 바닷가까지 가는 내내 단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바다까지 오는 데에 사십 분이 걸렸다. 속도도 위반하고 빠른 길로 골라 달렸지만 이것도 최선이었다. 나는 세미를 안아들고 바다를 향해 뛰었다. 오랜만에 맡는 바다냄새에 감격할 새도 없이 나는 다 헤진 세미의 지느러미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인어는 바다에서 살던 존재다. 세미에겐 마음만으로 이겨낼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내 곁에 있고 싶다던 그 마음을 도대체 헤아릴 수가 없어 울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바닷물이 차고 밀려나는 모래사장 위에 말라가는 세미를 눕혔다. 부드럽게 밀려오는 파도가 세미의 귀까지 채웠다가 다시 스러진다. 바닷물을 머금은 비늘이 다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지만 파도가 물러날 때마다 비늘 몇 조각이 함께 떠내려갔다. 나는 세미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무리 깨우려 해도 그는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홀로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제발 눈 좀 떠봐. 내 말 안 들려?”
나는 마른 눈으로 오열했다. 바닷물을 손에 담아 그의 입가로 가져가도 전부 턱으로 흘러내렸다. 세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꽉 다문 그의 눈꺼풀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갈퀴가 달린 세미의 손을 품에 담았다. 늘어진 몸처럼 팔에도 힘이 하나 없었다. 나는 마침내 울었다. 팍팍한 세상을 살면서 눈물 같은 것은 이미 말라 사라진 줄 알았는데 바보 같게도 잠든 세미의 앞에서 그게 그렇게도 펑펑 쏟아졌다.
“가지 마…….”
나만 두고 가지 마. 해풍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나는 판판한 가슴 위에 엎드린 채로 오열했다. 입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미 빛깔을 잃은 지느러미를 다시 되찾을 방법 따위는 없었다. 목을 조이는 무력감에 나는 아픈 기침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세미의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저 멀리에서 고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추모식이라도 열린 듯 갈매기들이 내려와 주위를 감싸고 앉았다. 객은 나 혼자뿐이다. 모든 게 바다였다. 파도가 다가와 세미를 감쌌다. 거짓말처럼 세미의 몸이 밀려갔다. 점점 더 멀어진다.
보름이었다. 세미는 동화 속의 인어처럼 딱 그만큼을 내 곁에 머물다 떠나갔다.
* * *
내 집에 세미가 있었던 흔적을 모조리 지우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침실에 두었던 욕조를 치우고, 그가 남기고 간 죽은 비늘들은 모두 정리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물을 버리면서도 세미의 냄새가 나서 울음을 참느라 목이 아팠다.
모든 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릴 적에도 그랬지만 세미는 내가 힘들 때 나타나 짧지만 꿈같은 것들을 보여주곤 사라졌다. 잠시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 나는 행복했으나 그 뒤로 이어진 폭풍을 견뎌내기에 내가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때문에 나는 한동안 열을 앓았다. 사춘기 때에도 없었던 열병을 지금에야 앓았다.
부러 집에는 잘 들어가지 않았다. 세미의 냄새가 모두 빠지려면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주로 회사의 숙직실에서 잤다. 모두가 나를 가리켜 일 중독자라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이 가장 필요했다.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다. 굳이 할 필요 없는 야근도 밥 먹듯이 반복했고 아버지가 주선해준 여자도 여러 번 만났다. 그리 좋아하지 않는 술도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셔봤고 일절 손에 대지 않던 담배도 피워봤다. 그럼에도 폐부에 차오르는 바닷물은 가실 줄을 몰랐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네가 내게 남긴 낙인은 너무나 깊고 아팠다.
어느 날은 아침 해가 밝고 나서야 집에 들어왔다. 침실에 들어오자마자 커튼을 쳐서 햇빛을 받았다. 이곳에 온통 밴 너의 냄새를 지우기 위한 내 발악이었다. 책상 위에는 주인을 잃은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영롱한 빛을 내는 비늘 한 조각이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거리다, 문득 떠오르는 네 기억에 나는 의자에 앉아 홀로 괴로워했다.
차마 정리하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네가 나와 대화하기 위해 쓰던 펜이나 노트 같은 것들은 모두 제자리에 그대로였다. 나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일기마저도 여러 번 쓰레기통을 다녀갔지만 결국엔 책상 위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마침 주말이다. 나는 무심코 너의 일기를 펼쳤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갈퀴가 붙어있어 펜을 쥐기 쉽지 않았을 텐데도 꾹꾹 눌러쓴 글씨는 꽤 정갈했다. 첫 페이지에는 네 이름과 내 이름이 있었다. 두 번째 페이지부터는 내가 가르쳐준 대로 글씨를 연습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어느 샌가부터 일기라 부를 만한 글귀 몇 구가 적혀있었다. 서툰 솜씨로 적어내린 자그마한 글자들에 나는 겨우 잊은 듯 했던 그날의 울음소리를 다시 토해냈다.
인어는 바다를 떠나 살 수 없어.
우리를 옮길 때마다 수십 개씩 떨어져나가는 비늘, 아가미에서 나는 출혈, 뭍에서 호흡할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 나는 아마도 죽어가고 있나봐, 타이치.
혹시 내가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너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일말의 희망에서 비롯된 생명력으로는, 기껏해야 한 달도 채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야 했어. 너에게서는 그리운 고향의 냄새가 났거든.
곁에 있었음에도 늘 그리웠던 사람, 내가 평생을 사랑했던 사람.
미안해, 타이치.
종이가 죄 젖었다. 악력을 못 이겨 자리를 벗어난 다이어리의 껍질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졌다. 나는 그것을 가슴에 품고 소리 죽여 울었다.
어린 시절 찍어놓은 사진들의 단편, 잔잔한 파도가 치던 자갈밭도 있었고,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호바위도 있었고, 해가 질 때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던 새털구름도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우리가 있었다.
인어는 말예요, 비늘무덤에서 태어난대요. 사람이 죽으면 묻히는 데가 무덤인데 그런 것에서 태어난다니 신기하기 짝이 없죠? 사실 그 무덤이라는 이름도 사람이 지은 말이지만요. 아무튼, 거기서 태어난 어린 인어는 비늘무덤의 비늘을 먹고 자라서 성체가 된대요. 성체가 되기 전까지 인어에게 필요한 식사는 비늘로 끝인 셈이지요. 그렇게 성체가 되고 나면 비늘무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대요, 마치 할 일을 다 마쳤다는 것처럼. 신기하지 않아요? 본 적 있냐고요? 그걸 어떻게 봐요. 비늘무덤은 아주 깊은 심해에 가라앉아있어서 볼 수가 없어요. 거기서 인어가 태어난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도련님.
*
아름다운 인어 카셈 연성해주신 헤이님께 감상 대신 드리는 글입니다.
연성에 비해 횡설수설 보잘 것 없는 글이 된 것 같아 죄송해지네요8_8
생각보다 길어져서 억지로 줄이다보니 끝이 미미해졌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예쁜 연성해주시는 헤이님께 많이많이 감사드리고 싶어요 사랑합니다8///8
모두 카와세미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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