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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세미른

[카와세미] 불꽃

Ryria 2016. 10. 29. 23:53

 

 

※ 병약소년(...) 세미와 평범하지만은 않은 카와니시 이야기입니다.

※ 커플링으로 쓰기도 민망한 수준...

※ BGM : Finger spoon - 잊혀진 계절

 

 

 

 

 

 

 

사람들은 늘 염원을 가진다. 배가 고픈 사람들은 무언가 먹을 것을 바랄 것이고 잠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하고 안락한 침대 위에서 잠에 드는 것을 바랄 것이다. 만약 그 누군가가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성적이 잘 나올 것을 소원할 것이며 회사를 차린 사업가라면 물건이 잘 팔리길 원할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변의 주어진 것들로부터 늘 무언가를 바라게 된다. 그것은 가치, 자아실현, 욕망, 신념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실체에 깃들 수 있으며 자연히 사람들이 가진 염원은 저마다 다른 가치와 무게를 갖는다.

 

그리고 세미 에이타에게도, 아주 무겁고 간절한 염원이 있었다.

 

 

 

 

 

  

불꽃

카와니시 타이치 × 세미 에이타

 w. Ryria

 

 

 

 

 

거울 위에는 손바닥 자국이 그득했다. 그 위로 다시 먼지가 껴 척 보기에도 지저분했다. 아무도 그것을 닦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세미는 벽에 걸린 종잇장만 한 거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고는 내내 힘을 주어 누르고 있던 이마를 세심하게 살폈다. 아직 채 굳지 못한 상처 위에는 붉은 핏자국이 아주 선명했다. 세미는 조심스럽게 의료용 밴드를 그 위에 붙였다. 특별히 건드리지만 않으면 이대로 아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일을 하다가 시멘트에 머리를 부딪쳤다. 가벼운 찰과상이라 세미를 포함한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관리소장은 세미에게 잔뜩 쿠사리를 놨다. 본인 상태를 알면 제발 조심하라고 성화였다. 세미는 할 말이 없어 웃으며 고개만 주억거렸다. 고된 일보다 무섭고 힘든 게 병이었다. 그리고 세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그로 인해 완벽하게 바뀐, 그를 향한 세상의 시선이었다. 그것은 스물네 번째 해에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세미의 주위를 맴돌며 호시탐탐 그를 노렸다. 불가항력이었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최면을 걸듯 스스로 가면을 쓰고 지낸 이후 세미는 어느덧 네 번째 겨울의 초입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부모님은 세미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먼 옛날부터 그의 병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의사에게 이대로는 분명 세상을 살기 쉽지 않을 거라는 충고를 받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는 두 사람 사이에 막 불화가 싹트기 시작한 때라 세미에게 쏟아지는 관심 같은 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세미는 제 병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넘어졌다. 그맘때 애들이라면 흙바닥을 구르고 넘어지고 다치면서 크는 거라고 세미 역시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가 쓰러졌다. 그 흔한 찰과상에서 피가 멈추질 않아 병원까지 실려 갔다. 담임 선생님의 연락으로 부모님이 병원에 왔다. 간호사가 부모에게 세미의 병에 대해 설명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말의 죄책감은 있었는지 그들은 놀란 세미를 달랬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세미는 그때부터 자기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이 들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세미가 고등학교에 가던 해,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했다. 세미는 엄마의 손에 남겨졌다. 그래서 세미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홀로 벌어 그것도 가족이라고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엄마를 위해서였다. 성인이 되고 세미는 곧장 취직했다. 병에 대해서는 숨겨야 했다. 처음 했던 일은 식당이었다. 가까스로 다치지 않고, 들키지 않고 한 달을 채웠다. 월급을 받고 나서 뿌듯하게 엄마에게 줄 선물을 샀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세미를 반기는 것은 빈 단칸방의 고독뿐이었다. 엄마는 그 날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 당분간 집세와 생활비로 쓸 수 있는 약간의 돈을 남겨두고, 그녀는 세미를 떠났다.

 

병 때문에, 늘 세미의 주위를 맴돌던 그 빌어먹을 병 때문에 세미는 체육 시간에도 방과 후에도 늘 혼자여야 했다. 언제나 몸을 조심해야 했고 얕은 상처라도 치명적일 수 있었던 탓에 항상 몸을 수그리고 살아야 했다. 남들과 다르게 생존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기구한 인생이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책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모습이 세미가 그릴 수 있는 유일한 학창 시절의 추억이었다. 엄마가 떠난 날 홀로 남은 방안에서 세미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흘렸다. 서럽게 소리 내어 운 것도 아니고 온 울음소리를 목구멍 너머로 우겨넣으면서 짜게 울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이렇게 숨어 살지 않겠다고. 더 이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전전긍긍하고, 몸을 사리며 살지 않겠다고. 남들과 달라서, 남들보다 일찍 죽게 될 인생이어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하고 나를 필요로 해주는 사람들을 온힘을 다해 도울 수 있는, 약자의 편에 서는 약자가 되겠노라고.

 

 

 

세미가 살고 있는 동네는 지극히 평범한 곳이다. 그는 여전히 과거 엄마와 둘이 살던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그곳에 있었던 덕분에 세미에겐 안면 있는 동네 주민이 꽤 많은 편이다. 서글서글하고 싹싹한 세미를 싫어하는 이도 딱히 없었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근처에는 고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이 동네 지리에 빠삭한 세미는 일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의 하굣길을 지키곤 했다. 그것에는 여러 목적이 있었다. 당장은 그것이 세미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일이었다. 그래서 경찰들과도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장난으로 세미에게 이 동네의 치안을 담당하는 실세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딱히 그런 게 싫지 않아 세미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밝게 웃었다. 개중에 특히 세미와 친한 경찰관 몇은 그럼에도 종종 세미를 말렸다. 그가 앓고 있는 병을 익히 알고 있었던 탓이다. 우스갯소리를 지나고 나면 좀 더 진지하게 그들은 세미에게 말하곤 했다.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고. 그런 때면 세미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곤 했다.

 

저는 지금만 살거든요.

 

사실 그것은 푸념 같은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시한부 인생인 것도 아닌데 세미는 언제부턴가 늘 그렇게 살았다. 내일이 오리란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삶은 또 그것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불량 고등학생을 포함해 질 나쁜 폭력배들과도 싸운 적이 있다. 싸움은 그리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동네의 사소한 범죄율이 눈에 띄게 낮아진 것은 썩 즐거운 일이었다. 관할 경찰서에서 표창을 하겠다며 나서는 것은 세미가 말렸다.

 

그걸 삼 년을 지속하다 보니 어느 정도 요령도 생겨서 요즘은 어지간해서는 맞거나 다치지도 않았다. 인근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과도 친해져서 곧잘 농담도 던지고 그랬다. 어디에도 상처 받을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늘 세미는 상처투성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었다. 세미는 하루의 끝을 늘 편의점을 들르는 것으로 맞이했다. 오늘의 늦은 저녁과 내일 아침거리를 사기 위한 방문이었다. 구입하는 것은 늘 비슷했다.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우유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마침 남은 게 있다. 늦은 시간에 오면 보통 없는 게 많아서 선택지가 적었지만, 오늘은 손님이 그리 많이 오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심사숙고해서 고른 도시락과 샌드위치를 카운터에 올려두고 지갑을 꺼냈다. 바코드를 찍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들린 목소리는 의외의 것이었다.

 

 

저기.”

 

 

세미는 고개를 들었다. 워낙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라 세미는 그가 여섯 달 전부터 이 편의점에서 일하는 직원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손가락으로 세미의 머리 어디쯤을 가리켰다.

 

 

머리에서 피 나는데요.”

.”

 

 

세미는 서둘러 밴드 위로 손바닥을 문질러본다. 왼쪽 눈 위, 이마에 생긴 상처에서 조금씩 피가 묻어났다. 조심스럽게 붙인다고 붙였는데, 어쩌다가 간신히 아문 상처가 또 말썽인 모양이었다. 세미는 곤란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땅히 닦을 게 없어 난감하다. 그런 줄 알고 직원이 휴지와 물티슈를 건넸다. 고맙다고 그것을 받아든 세미는 휴지를 펼쳐서 밴드 위로 환부를 세게 눌렀다. 그리 큰 상처가 아님에도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을 짐작한 세미는 잠깐 갈등했다. 병원을 가야 하나. 지금 시간에는 응급실밖에 답이 없다. 혼자 고민하다가 세미는 집에 두고 나온 지혈제를 떠올렸다. 회복이 병원만큼 빠르진 않아도 금방 멎을 것이다. 세미는 다시 한 번 직원에게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계산을 마친 물건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는 그를 붙잡은 것은 보다 낮은 목소리였다.

 

 

엉망이네요.”

?”

얼굴이.”

 

 

당황한 세미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이건 신종 시비인가 싶어 세미가 웃으면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는 한결같은 무표정으로 세미를 꿰뚫을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느릿느릿 대답했다.

 

 

험한 일 하시나 봐요.”

 

 

세미는 일용 노동자였다. 지금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험한 일이다. 더 쉬운 일도 있었지만 굳이 그런 일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세미 본인의 의지였다. 세미는 슬슬 기분이 나빠졌다. 내 얼굴이 험한 일 할 것처럼 생겼나. 슬쩍 표정을 굳히자 그는 더 말이 없다. 많이 파세요. 건성으로 인사를 건네고 세미는 서둘러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 * *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세미가 일하고 있는 학교 건물 리모델링 공사 현장이었다. 일이 일이라 주기적으로 짧은 쉬는 시간을 가지는데, 세미가 제 몫의 일을 마치고 잠깐 계단 위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어제 편의점에서 봤던 그를 발견했다. 조금 껄끄러웠다. 이 학교 학생이었구나. 눈이 마주친다. 황급히 피하려던 세미에게 그가 먼저 꾸벅 인사했다. 얼떨결에 세미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세미는 다시 작업장으로, 그는 제 수업을 찾아 갈 길을 갔다. 이 일이 끝날 때까지 이따금씩 이 학교에서 그를 만날 것 같다는 생각에 세미는 조금 피로해졌다.

 

역시나 예감은 적중했다. 일이 끝나고 씻고 옷까지 갈아입고 나왔더니 세미의 눈앞에 불쑥 차가운 음료가 튀어나왔다. 놀라서 반짝 고개를 들어 보았더니 예의 그 학생이 서있었다. 그는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서있는 세미에게 직접 캔을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털썩 세미 옆에 앉는다. 이건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세미는 앉은 채로 그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말한다.

 

 

따줄까요.”

 

 

대답도 듣지 않고 그는 세미 손에서 다시 음료를 뺏어갔다. 뚜껑을 따자 탄산이 터졌다. 시원한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가 다시 세미 손에 음료를 쥐어준다. 뒤늦게 고맙다고 말하고 그것을 한 모금 들이켰다. 낯선 침묵이 어색해 세미는 생긋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이 학교 다니나 봐요. 어제 편의점, 맞죠.”

여기서 일해요? 어쩐지 얼굴에 상처가 덕지덕지.”

 

 

험한 일 하시나 봐요. 불과 어제 그가 했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얼굴이 문제가 아니라, 얼굴에 난 상처들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안 힘들어요?”

안 힘들면 일이 아니죠.”

다른 일도 많을 텐데.”

내 인생에 대한 도전이에요.”

 

 

세미가 배시시 웃었다. 그 낯에 그는 말문이 막힌 듯 했다. 하긴 어제 처음 말을 나눈 그가 세미의 사정 따위 알 턱이 없었다.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긴 그가 대뜸 세미에게 물었다.

 

 

밥 먹을래요?”

 

 

참 낯도 안 가리고 뻔뻔한 사람이다. 그게 세미의 속마음이었다. 고된 일로 피로도 쌓였고 배도 고팠지만 곧 고등학교 하교 시간이다. 자기는 할 일이 있다고, 밥은 친구들이랑 먹으라며 세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음료수는 잘 마실게요. 손에 든 캔을 그를 향해 까딱거렸다. 그렇게 돌아서는 세미의 뒤를 그는 조용히 따라왔다.

 

 

왜 따라와요?

할 일이 뭔지 궁금해서요.”

그게 왜 궁금한데요.”

방금 일 끝났잖아요. 또 무슨 일을 더 하나 싶어서.”

그러니까 그게 왜.”

그냥. 나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내가 궁금해 하네요.”

 

 

세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물어보는 족족 알쏭달쏭한 대답만 들렸다. 적당히 있다가 돌아갈 거라 생각하고 세미는 그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쁜 일 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쫓아오든지 말든지 알 게 뭔가 싶었다.

 

 

이름이 뭐예요.”

그 쪽은?”

카와니시 타이치요.”

……세미 에이타.”

 

 

대뜸 통성명을 했다. 역으로 물어보면 입을 다물 줄 알았는데 그는 생각보다 쉽게 제 이름을 말했다. 세미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적당히 상대해주다 돌려보낼 생각이었는데, 그는 안 그렇게 생겨선 시답잖은 얘기들을 주절주절 잘도 했다. 나이 얘기도 나왔다. 세미가 한 살 더 많았다. 말 편하게 하라는 카와니시의 말에 세미는 손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말에 그렇게 했다. 거기엔 그가 좀 당황한 듯 보였다. 킥킥 웃으며 세미는 흘러가듯 그와 말을 나눴다.

 

고등학교 정문에서는 벌써 하나둘 씩 무리지어 나오는 학생들이 보였다. 바쁜 걸음으로 우선 학교 주변부터 한 바퀴 휭 둘러보고 세미는 수상한 사람이 보이진 않는지 곳곳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다가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고등학생 둘과 딱 마주쳤다. 세미는 다짜고짜 가서 그들을 향해 이것들 봐라, 했다. 카와니시는 은근슬쩍 숨을 죽였다. 그러나 세미는 거침이 없다. 학생들이 세미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저번엔 안 그러더니 이젠 형님 소리도 자연스럽다. 누가 보면 진짜 불량배인 줄 알겠다. 세미가 직접 그들 손가락이 쥐고 있는 담배를 뽑아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지그시 밟았다. 늘 있던 일처럼 세미는 그들에게 잔소리를 했다. 한창 반항심이 강할 나이였음에도 그들은 세미에게 유난히 고분고분했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세미의 뒤를 쫓아다니던 카와니시가 말을 걸었다.

 

 

할 일이란 게 이런 거예요? 불량 청소년 교화?”

담배 피우는 놈들이라 뭐, 바른 생활 청소년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나쁜 애들은 아니야.”

그럼 뭐하는 건데요, 지금?”

우리나라의 미래를 지키는 중이야.”

 

 

카와니시가 이상한 표정을 하고 세미를 바라본다. 힘든 일 끝나고 여기까지 와서 해야 하는 일이 뭔가 궁금했는데 꽤 실망한 표정이었다. 세미는 굴하지 않고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일장연설을 했다. 그 와중에도 하굣길에 만나는 학생들 몇 명과는 인사도 하고 농담도 나눴다. 그것을 지켜보던 카와니시가 슬쩍 또 물었다.

 

 

애들이랑 친하네요.”

그렇지. 처음에는 고생했다고. 애들 말로는 내가 제일 수상해보였대.”

 

 

그나마 좀 잘생겼다는 소리 듣는 얼굴 덕분에 학생들과도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이제는 여학생이고 남학생이고, 성별 상관없이 세미는 이 학교의 명물이자 인기 스타였다. 옆엔 친구냐고,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며 학생들은 세미를 쫓아다니는 카와니시를 힐끔거렸다. 대충 얼버무려 대꾸하곤 세미는 샐샐 웃기만 했다.

 

학교 인근이 조용해지는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어둠이 깔린 시각이 다 되어서였다. 이제 집에 돌아갈 거라고 세미는 기지개를 켜고 말했다. 너는 안 가냐. 묻는 말에 카와니시가 가야죠, 하고 둘러댔다. 그래놓고 계속 세미를 쫄쫄 쫓아온다. 왜 자꾸 쫓아오느냐고, 어차피 내일도 일 나갈 텐데 학교에서 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세미가 말했다. 잘생긴 건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적당히 하고 돌아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엔 카와니시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기어코 세미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앞까지 따라온 카와니시가 물었다.

 

 

자기 몸도 못 지키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지킬 생각을 했어요?”

 

 

세미는 또 슬금슬금 정색을 했다. 어제도 그렇고, 또 잘 나가다가 오늘도 마지막에 꼭 시비를 건다. 뒷머리를 한 번 벅벅 문지르고 세미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카와니시가 팔을 뻗어 피가 났던 세미의 이마를 슬쩍 문질렀다. 새 밴드가 붙어있지만 여전히 가운데에는 까맣게 피가 굳어있었다. 그것을 감상이라도 하듯 빤히 바라보던 카와니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인은 정작 상처투성이인데 이 몰골로 애들 지킨다고 하면, 걔들이 믿어요?”

…….”

나라면 못 믿을 거야.”

 

 

그 말에 세미가 울컥했다. 그래서 카와니시의 손을 매섭게 쳐냈다. 그는 그럼에도 여전히 표정이 없다. 감정이란 게 없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그의 두 눈은 무심했다. 화를 낼까 소리를 지를까 고민하다가 세미는 그냥 휙 등을 돌렸다. 그가 툭 던진 말들에는 대답도 않고 세미는 집으로 향하는 길로 걸음을 옮겼다. 카와니시는 아마 계속 그곳에 서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가진 특유의 시선이 끈덕지게 느껴져서, 집에 들어온 이후에도 세미의 귀에는 의아하게 묻는 목소리가 이명처럼 남아있었다.

 

만나서 통성명을 하고, 서로가 누군지 알고 대화한 게 기껏해야 하루가 된 사이였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니 뭔가 기분이 기묘했다. 몸조심하라던 경찰관의 우려와 걱정보다 카와니시가 했던 말이 더 기분 나쁘게 와 닿았다. 세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공부를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남들과 뛰어놀며 어울릴 수도 없어서 그저 스스로 존재감을 지우며 지내야 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미를 알고 있고 좋아하고 있다. 겨우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으니 그걸로 됐다는 생각을 세미는 연거푸 들이켰다. 스스로를 지키는 것엔 별로 의미가 없었다. 세미에겐 간절히 원하는 내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그 이후로 카와니시와는 틈만 나면 만나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곤 했다. 예의가 없다거나 경우가 없다거나, 아무튼 카와니시에 대해 세미는 그렇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맞는 구석이 좀 있어 친해지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는 좀 특이했다. 말수가 많은 듯 적었고, 표정이 없는 듯 다양했다. 말투가 좀 직설적이라 그렇지 실제로 그렇게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조금씩 카와니시를 이해하면서 세미는 그와 부쩍 가까워졌다.

 

오늘은 그가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날이었다. 세미는 집에 가기 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편의점에 들를 생각이었다. 원래도 다니던 곳이었고, 근래에는 말동무가 생겼기에 편의점에 가야만 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생겼다. 고된 일의 끝에서 맞이하는 기분 좋은 목소리는, 잔인하게 표현하자면 아마도 세미를 좀먹고 있는 것이 아닐까.

 

와중에 세미는 또 피를 보았다. 현장에서 튀어나온 철근에 팔뚝을 긁힌 것이다. 또 잔소리를 들을 것을 생각해 일부러 숨기려 했지만, 세미의 경우 그런 것을 모르는 척하기가 아주 어렵다. 시끄러운 관리소장이 또 나섰다. 세미가 앓고 있는 병과 건설 현장의 위험성, 그리고 자꾸 조심성 없이 여기저기를 긁히고 다닌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그는 세미에게 일을 관둘 것을 요구했다. 민폐란다. 그는 아무리 본인이 괜찮다고,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해도 그러다가 언젠가 한 번 크게 다쳐서 사망 사고라도 나면, 너도 큰일이지만 우리도 큰일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쳤다. 세미는 애써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를 내기엔 차마 이 심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가보라며 관리소장이 세미를 직접 현장 밖으로 끌고 나왔다. 졸지에 일터에서 쫓겨난 세미는 한참을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병원에는 결국 가지 않았다. 눈에 띌 만큼 큰 상처도 아니었던 탓이다. 세미에겐 작은 상처조차 치명적일 수 있었지만 늘 가지고 다니는 의료 용품들로 굳이 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어지간한 상처는 혼자 지혈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세미의 가방에는 늘 약품 냄새가 가득했다. 소독약, 지혈제와 압박 붕대, 상처를 가릴 수 있는 의료용 밴드는 세미에게 필수품이었다. 휴게실에서 대충 처치를 끝내고 깨끗한 거즈로 상처 부위를 압박했다. 피가 살살 새는 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무딘 감각이었다. 세미는 코끝이 찡해졌다. 더는 슬퍼하지 않으려 고개를 꺾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현장에서 쫓겨나듯 나오고, 일자리와도 안녕한 세미는 그럼에도 고등학교를 찾았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하루였지만 끝이 어쩐지 씁쓸했다. 그리고 나서 세미는 카와니시가 일하는 편의점에 갔다. 늘 같은 시간에 방문하는 세미를 그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편의점 문이 열리자마자 카와니시는 세미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세미가 샐쭉 웃었다. 늘 사가던 도시락과 샌드위치가 아니라 맥주와 함께 먹을 군것질거리를 집었다. 카운터에 올려놓으니 카와니시가 의아한 표정을 하고 세미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묻기 전에 세미가 먼저 대답했다.

 

 

나 잘렸다.”

 

 

바코드를 찍다 말고 카와니시가 되묻는다.

 

 

왜요?”

오늘도 좀 다쳐서.”

많이 다쳤어요?”

아니, 그냥 긁혔어. 살짝.”

공사 현장인데 사람이 좀 다쳤다고 그렇게 막 잘라도 돼요?”

 

 

카와니시는 평온한 얼굴로 은근히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질문에 세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충 얼버무리고 세미가 재촉했다. 얼른 계산해줘. 카드를 받고 카와니시가 결제를 마쳤다. 영수증을 내민다. 세미는 그것을 받아들었지만 카와니시는 놔주지 않았다. 건조한 목소리로 그가 묻는다.

 

 

“30분만 기다릴래요?”

 

 

세미가 고개를 든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카와니시는 표정이 읽기 어렵다. 화도 내지 않고 그렇다고 잘 웃지도 않았다. 그래서 세미에겐 카와니시가 여전히 낯설었다.

 

 

곧 끝나요. 데려다줄게요, 집에.”

됐어.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피곤할 텐데 너도 집 가야지.”

지켜주고 싶어서요.”

…….”

에이타 씨의 미래를.”

 

 

세미는 멍해졌다. 처음 불린 이름에 겹쳐 언젠가 카와니시에게 했던 말들이 불현 듯 떠올라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었다. 불편한 이명이 파도처럼 밀어닥친다. 그러나 세미는 곧 밝게 웃으며 가볍게 그를 타박했다.

 

 

낯간지럽게. 간다, 내일 또 올게.”

 

 

세미는 등을 돌렸다. 카와니시도 더 붙잡지 않았다. 편의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세미는 카와니시가 했던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았다. 장난스럽게 되받아쳤지만 그 말 한 마디마디에 꾹 눌러 담은 진심을 세미는 결코 모르지 않았다. 팔뚝에 난 상처를 한 번 꾹 말아 쥐고, 찌릿한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입 밖으론 하하 웃음이 난다. 벌어진 입으로 제법 차가워진 공기가 훅 들어왔다. 어두운 밤, 골목길 사이로 세미의 입김이 퍼졌다. 벌써, 겨울이 오는 구나. 희미한 가로등 불빛, 그리고 그 아래 떨어져 죽어있는 나방 한 마리가 보였다. 월동越冬은 누구에게나 가혹하다. 세미는 잠잠하게 상념에 젖었다.

 

 

 

집 앞에 누군가 서있었다. 세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걸음을 늦췄다. 평소 세미와 친분이 있던 경찰관이었다.

 

 

세미 씨!”

 

 

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는 세미가 고등학교 순찰을 시작한 해에 경찰이 된 풋풋한 신입이었다. 세미는 봉투를 흔들며 그다지 긴장감 없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면 제 딴에는 뭔가 심각하고 진지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보통의 경우 그럴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세미는 알고 있었기에 줄곧 차분했다. 한달음에 세미에게 달려온 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의 말에 세미는 그를 집으로 들였다.

 

별로 대접할 게 없어 따뜻한 물에 우롱차 티백을 넣어주었다. 그는 따뜻하게 끓인 차가 다 미지근해질 때까지 그것을 입에도 대지 못했다.

 

그러니까 경찰관의 말을 요약하자면, 근래에 세미네 집 근처를 배회하는 수상한 사람들을 여러 번 포착했다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순찰을 대폭 늘렸지만, 영 그것을 미심쩍게 생각한 그가 그 중 하나를 뒤쫓던 와중에, 그 일당 중 하나가 예전에 세미 때문에 한 번 잡혔다가 보석금으로 풀려난 폭력배 일당과 은밀하게 대화를 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세미는 단박에 작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며칠 전에 봤던, 그 담배 피우던 고등학생 중 하나가 연루된 사건이었다.

 

경찰이 말하는 폭력배 일당이란 일수꾼들을 뜻하는 거였다. 세미와 유난히 친했던 그 고등학생은물론 프라이버시라고 생각해 자세한 배경을 물은 적은 없지만집안 사정으로 그들에게 물리적 압박을 당하던 중이었다. 그 모습을 세미가 발견했고, 곧장 경찰에 신고한 뒤에 직접 나서서 그 고등학생을 구출해냈다. 그 일수꾼들의 뒤로 줄줄이 무언가 달려있어서 그랬는지 경찰 수사는 일사천리로 처리되었다. 그 이후 세미는 더 이상 그 일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끄트머리에 걸린 꼬리는 잘렸고, 더 이상 행동력을 잃은 그들이 세미나 예의 그 고등학생에게 해를 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세미네 집까지 찾아온 경찰관은 혹시 세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걱정해서 실례란 것을 알고도 이 시간에 직접 세미의 집을 방문했다고 했다. 고마움 반 걱정 반으로 세미는 웃으면서 괜찮을 거라고, 아무 일 없을 거라며 그를 달랬다. 그러나 그는 꽤 불안해보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그는 다 식은 차를 홀짝 들이켰다. 집을 나가면서 그는 세미에게 당부했다.

 

 

그런 놈들은 치사하고 집요하기 짝이 없다고요. 세미 씨, 꼭 몸조심하세요. 동네 치안은 저희 몫이니 이제 관여하지 마시고요.

 

 

하얀 입김을 뿜으면서 좁고 굽어진 골목길을 내려가는 그 등을 바라보며 세미는 마른 웃음을 지었다. 홀로 남은 냉골 안에서 세미는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은데.”

 

 

싱크대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둔 봉투를 뒤적거렸다. 날이 쌀쌀해 덩달아 차가운 맥주 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세미는 그것을 냉장고에 처박아두었다. 과자는 뜯지도 않는다. 저녁으로 먹을 것도, 내일 아침으로 먹을 것도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 * *

 

 

 

 

 

세미는 간만에 늦잠을 잤다. 덕분에 고등학교의 등굣길도 생략했다. 집에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세미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오랜만에 바깥 구경을 할 참이었다.

 

길고 좁은 골목길을 차근차근 밟아 내려오면 어느덧 아스팔트가 고르게 깔린 차도가 나온다. 마침 기차가 길목으로 들어왔다. 차단기가 내려오고, 세미는 골목길 앞에 우뚝 섰다. 그러다가 눈에 익은 뒷모습을 발견한다. 세미는 고개를 기울여 건너편을 보았다. 골목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은 카와니시였다. 먼발치에서 그를 지켜보는데 세미는 좀 울컥했다.

 

기차가 지나가고 차단기가 올라갔다. 세미는 느릿느릿 걸어 카와니시의 뒤에 섰다. 주먹으로 가볍게 그의 어깨를 툭 친다. 카와니시는 금세 고개를 돌리고 세미를 향해 섰다.

 

 

왜 여기 있어?”

기다렸어요.”

누굴?”

형이요.”

?”

그냥.”

 

 

또 그냥, 맨날 그냥. 카와니시의 그 단어는 명확한 이유가 늘 없어서 대꾸할 말도 없게 만드는 갑갑한 것이었다. 대답 없이 세미가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세미의 표정을 지켜보던 카와니시가 버릇처럼 뒷목을 문질렀다.

 

 

연락처가 없어서.”

…….”

딱히 연락할 방도가 떠오르질 않았어요.”

 

 

더 이상 그를 추궁할 생각이 들지 않아 세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기억이란 게 머릿속에 남기 시작한 시기부터 늘 외로웠던 터라, 그리고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터라 세미는 한 번도 외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근데 카와니시를 만나면 뭔가가 자꾸 허전해졌다.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 누군가에게 기대며 살지 않겠다고,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고 더 이상 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가야 할 길을 잃고 헤맬 뿐이라면,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게 살아갈 거라고 세미는 스스로 다짐했다. 그랬었다. 근데 그 역시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다. 자신을 돌보겠다고, 보잘 것 없는 세미의 인생을, 그는 바라지 않는 내일의 그를 지켜주겠노라고 카와니시는 농담 같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표정이 더 세미를 외롭게 했다.

 

 

밥이나 먹을래?”

 

 

세미가 물었다. 카와니시는 쉬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카와니시가 세미를 이끌고 간 곳은 꽤 값나가는 레스토랑이었다. 메뉴판을 펼치고 세미는 금방 난감해졌다. 밥을 먹자는 게 딱히 이런 말은 아니었는데. 곤란해 하는 얼굴을 보고 카와니시가 익숙하게 말했다. 제가 살게요. 그 말에 세미는 좀 더 불편해진다. 이제 보니까 부잣집 도련님이었어? 웃으며 하는 말에 카와니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제가 월급날이었단다. 세미는 금세 수긍했다.

 

 

잘 사는 애가 아르바이트는 왜 해?”

 

 

카와니시는 아니라고 했지만 세미 눈엔 아닌 게 아니었다. 실제로 레스토랑이라 부를 만 한 곳 자체에 방문하는 것이 처음인 세미의 눈에는 아주 능숙하게 주문을 하는 카와니시의 모습이 결코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세미가 특별하기 때문에 이런 곳에 데려온 게 아니라 이게 그의 일상이었던 거다. 고급 탁자 위에 비스듬히 턱을 괴고 세미가 카와니시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빠랑 싸웠거든요. 그래서 가출했어요.”

?”

그런 일이 있어요.”

 

 

대강 둘러대는 대답에 세미는 더 묻지 않았다.

 

 

괜찮아요?”

뭐가.”

상처.”

 

 

카와니시가 팔을 뻗는다. 자연스럽게 세미의 왼쪽 위 이마를 더듬는다. 닿는 것은 매끈한 피부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딱지였다. 까맣게 굳어 갈라지고 있는 상처 위를 카와니시는 세심하게 보듬었다. 세미는 그 손을 치울 생각도 않고 멍청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나아요, 이거.”

 

 

그러게. 피가 잘 멈추지 않는 병인 건 알았는데 상처도 낫는 게 느린가봐. 하마터면 세미는 그렇게 대꾸할 뻔했다. 세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다물고 그를 보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만난 날을 고작 한 달도 채우지 못한 짧은 인연임에도 그는 편안했다. 누구와도 허물없이 지내는 세미에게도 그는 기이한 존재였다.

 

세미는 잠시 사고를 멈췄다. 그를 보면 몸 안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허전함, 처음으로 수면 위로 솟아오른 외롭다는 감정, 그리고 기묘할 정도로 가까이 닿는 안락함. 마침 음식이 나왔다. 겉면을 가볍게 익힌 고기는 핏물이 옅게 배어있었다. 세미는 카와니시를 보고 억지로 입 꼬리를 당겨 웃었다. 속에서 끓고 있는 것은 분명 낯설고 괴이하며 어떻게 보면 아주 험악한 것이었다.

 

내일의 해가 뜨길 하루도 바란 적 없다. 밝은 미래 따위는 더더욱 그랬다.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세미 말고 그 인생에 희생될 누군가가 존재해야 했다. 세미는 그것을 거부하기로 했다.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고기 한 점을 우물거리면서 그는 그 반증으로 단 한 번도 카와니시를 보지 않았다.

 

 

 

 

 

* * *

 

 

 

 

 

카와니시는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미는 오늘 편의점을 방문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집에서 조금 더 떨어져있지만 다른 편의점을 다니려 했다. 천천히 멀어져야 했다. 카와니시가 세미에게 더 이상 완벽한 타인이 아니게 됨을 경계해야 했다.

 

조금 다른 일상이었다. 늘 일을 나갔던 것 대신 카와니시와 점심을 먹었다. 학교에 다녀와야 한다며 그는 버스 정거장에서 세미에게 연락처를 물었다. 우물쭈물하는 세미를 바라보다가 카와니시는 세미의 휴대폰에 자기 번호를 꾹꾹 눌러주었다. 가르쳐주기 싫은 거 알겠으니 나중에 내키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카와니시는 그렇게 휭 버스를 타고 가버렸다. 혼자 남은 세미는 슬금슬금 저를 좀먹으려는 고독과 싸우기 시작했다. 고개를 털고 잡념을 지우려 서점에 가서 책을 훑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감각으로 인식된 것은 지워지기 어려웠다. 그 사실을 세미도 짐작하고 있었다.

 

종일 밖을 떠돌았다. 아직 완연한 겨울이 채 오지 않았는데 내내 바깥에 있었다고 손끝이 발갛게 물들었다. 세미는 두 손을 겉옷 주머니에 푹 눌러 넣었다. 주머니 속이라고 다를 바 없이 찬 기운만 돌았지만 그래도 직접 바람을 맞지 않으니 한결 나았다. 세미는 유독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매년 겨울이 버거웠다. 벌써 하얗게 입김이 쏟아진다. 세미는 올 겨울이 아주 혹독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미는 서리가 얼어 겨울로 치닫는 계절, 급류에서 피어난 불꽃이었다.

 

 

 

발걸음이 직직 끌려 조금 늦어졌다고 학교 앞은 한산했다. 이미 하늘에는 진하고 정밀한 어둠이 깔렸다. 세미는 탄식하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느리게 근방을 걷는다. 불이 나간 가로등 아래, 희미하게 노란 불빛이 반짝였다. 라이터였다.

 

 

또 담배 펴?”

 

 

가까이 다가간 세미가 웃으며 물었다. 예의 그 학생이었다. 앳된 얼굴로 그가 웃었다. 그러나 표정 어딘가가 불안해보였다. 세미는 오늘따라 그 미묘한 변화를 단박에 알아챘다. 그러나 아직 어린 소년은 아무 말을 않았다.

 

 

무슨 일 있냐?”

아니요……. 저 같은 게 일은 무슨 일.”

 

 

세미도 들은 게 있었다. 그동안 잠잠했던 압박과 괴롭힘이 다시 시작된 것일지도 몰랐다. 세미는 동시에 경찰관의 말을 떠올린다. 그런 놈들은 집요하고 치사하기 짝이 없다며, 부디 몸조심하고 적당히 수그리고 다니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어린 소년은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신고를 하더라도 그 이후를 책임질 만큼 노련하지 못했다. 세미라고 그런 상황이 익숙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성인이니 그보다 나을 게 뻔했다.

 

 

도와줄게.”

 

 

세미가 입을 열었다. 소년은 세미를 바라보고 불안한 눈동자로 되묻는다. 진짜요?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여전히 망설이는 표정이다. 그가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낡은 운동화로 연하게 남은 불빛을 비벼 껐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는 아예 등을 돌린다. 세미는 그런 학생의 어깨를 부드럽게 쥐었다. 동시에 무언가 둔탁한 것에 배를 찔렸다.

 

아찔한 통증에 세미가 허리를 굽히고 주저앉았다. 쨍그랑, 짧은 길이의 칼이 아스팔트 바닥을 나뒹군다. 피가 빨갛게 묻어있었다. 세미는 고개를 들었다. 소년은 눈에 띌 만큼 덜덜 떨고 있었다. 겁을 먹은 것이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세미는 주위를 살폈다.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무리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마도 몇 달 전의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리라.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소년이 뒷걸음질 쳤다. 우는 얼굴로 그는 덜덜 떨고 있었다. 세미는 힘없이 추락한 소년의 손을 바라보았다. 빨갛게 상흔으로 난도질된 손바닥은 피를 울컥울컥 뿜고 있다. 세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타격의 통증은 있었지만 찔리지 않았다. 소년의 어깨를 꽉 붙들고, 세미는 그에게 휴대폰을 쥐어주었다.

 

 

전화, 뺏겼지.”

 

 

그리고 애써 웃는다.

 

 

이거 가져가. 그리고 병원부터 가봐. 가서 경찰서에 연락해. 이건 네 잘못이 아냐. 그러니 도망쳐.”

 

 

공포에 질린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소년은 비틀거리며 빠르게 어둠 속을 빠져나갔다. 세미는 느리게 등을 돌렸다.

 

어차피 내일을 기대하고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까이 다가온 죽음의 공포는 어김없이 사람을 옭아맸다. 적어도 이런 식으로 죽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그들은 세미를 둘러싸고 이죽거렸다. 그 일로 경찰까지 연루돼서 곤란한 일을 겪은 게 한둘이 아니라면서 욕지거리를 뱉었다. 윗선에서 돈줄을 잘린 것도 모자라서 이 동네에선 먹고 살 길도 막혔으니 네 놈 목이라도 따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다는 살벌한 말들도 서슴없이 뱉었다. 그래, 경찰관의 말대로 그들은 사람 하나 죽여 묻는 것쯤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목소리들은 세미의 귓등을 비켜나갔다. 세미는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이 위급한 상황에 거짓말처럼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생전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보인다고 하더니 제 인생의 전부는 그였던 모양이라고 생각하곤 세미가 픽 웃었다.

 

무릎이 꺾였다. 허리가 굽어지고 이어서 세미의 머리통이 아스팔트에 처박히기까지 삼 분도 걸리지 않았다. 세미는 있는 힘껏 몸을 웅크렸다. 입에서 비릿한 맛이 났다. 피였다. , 오늘 죽겠구나. 온몸을 구타하는 고통과 마주하면서 세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스팔트가 차가운 것도 몰랐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 또한 들을 수 없었다.

 

 

 

 

*

 

 

 

오랜만의 업로드네요.

뒷내용이 있습니다.(놀랍게도)

세미를 아프게 해서 미안하지만... 원래 사랑하는 만큼 굴리는 사람입니다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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