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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세미른

[카와세미] 나방

Ryria 2016. 10. 30. 21:22

 

※ '불꽃'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 주의해야 할 요소가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가립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드래그 하셔서 보시기..

사망요소 주의

♪BGM : Finger spoon - 잊혀진 계절 

 

 

 

 

 

 

세미 에이타. 아버지가 보낸 충견의 입에서 불시에 튀어나왔던 그 이름을 듣고 기억해둔 것이 카와니시는 그저 우연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나방

카와니시 타이치 × 세미 에이타

 w. Ryria

 

 

 

 

 

이제 슬슬 돌아갈 때도 되지 않았냐.”

 

 

카와니시는 그 말에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표정만 보고도 카와니시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집이 딱 지 아빠를 빼다 박았다며 혀를 찼다. 카와니시가 차게 대꾸한다.

 

 

설득하러 온 거면 돌아가요.”

네 아버지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하셔.”

그렇다는 인간이 집 나간 아들한테 전화 한 통을 안 하더라고요.”

그거야 회장님이 많이 바쁘셔서,”

핑계 많은 건 여전하네요.”

 

 

그는 어린 시절 카와니시의 곁을 지키던 경호원 중 하나였다. 카와니시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형 동생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래서 아마도 카와니시의 아버지는 그를 회유책으로 사용하려는 모양이었다. 카와니시가 불편한 표정을 했다. 더는 그도 카와니시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포기한 것 같다. 어떤 방법으로도 카와니시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그는 한 풀 꺾인 표정으로 은근히 물었다.

 

 

왜 그렇게 회장님을 미워해?”

몰라서 물어요?”

요즘 시끄러운 일 때문에 회장님 많이 힘들어하셔.”

자업자득이죠. 자기가 그렇게 꼬리를 길게 늘여놨으니 안 걸리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매정한 녀석.”

어쨌든 나는 돌아갈 생각 없어요. 그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쌓아올린 자리 위에 앉을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드르륵, 의자가 뒤로 밀렸다. 나무로 만든 마룻바닥이 매섭게 긁힌다. 카와니시는 자리를 떴다. 등 뒤에 남자를 내버려둔 채로 카와니시는 더는 그를 신경도 쓰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어깨 너머에서 얕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카와니시가 궁궐 같은 집을 나와 한 칸짜리 방에 살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삼년을 채워가고 있었다.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 예상했는지 처음엔 아예 거들떠도 보질 않더니 근래에 들어 아버지는 자꾸 측근들을 카와니시에게 보냈다. 짧은 뉴스의 일부를 장식한 모종의 사건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와니시는 오히려 그 일을 다행으로 여겼다. 곧 죽어도 가족은 가족이라며 끊임없이 저를 설득하려 들던 그들에게 카와니시는 속으로 자주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카와니시가 하나뿐인 자식이고 아들이라 찾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위기의 회사를 자신을 대신해 이어갈 대체품이 필요한 것뿐이었다.

 

카와니시가 아버지와 대립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막 성인이 된 이후쯤부터였다. 그것은 카와니시의 조부 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뿌리 깊은 부정이고 울혈이었다. 이 회사의 시작이 사실은 야쿠자 집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리고 여전히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깨닫고 카와니시는 곧장 집을 나왔다. 아버지도 당시에는 카와니시를 잡지 않았다. 철도 없고 생각도 없어서 여태껏 이 회사를 지탱해온 근간을 무시하려 드는 것이라고, 정의감에 물들어서 최소한의 희생조차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치부했다. 카와니시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 희생의 길 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깔려있었는지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

 

 

 

카와니시가 세미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두 번째 집으로 이사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편리를 위해 주로 도심 근처에 집을 찾았던 카와니시는 끊임없는 불청객의 방문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근교로 이사를 했다. 휴학을 했던 학교에도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바깥출입이 많아진 카와니시는 다른 어디도 아니고 학교에서 그를 마주쳤다. 너덜너덜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지저분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얼굴에 흙을 묻힌 그는 이상하리만치 빛을 내고 있었다. 카와니시는 그를 보자마자 걸음을 슬쩍 늦췄다. 발걸음이 무겁게 늘어지다가 이내 우뚝 멈춘다. 목장갑을 낀 손등으로 땀이 흐른 이마를 훔치는 그 모든 동작까지 카와니시는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얼굴이며 팔뚝에 아무렇게나 붙여놓은 반창고들이 무색할 만큼 그는 눈이 시리도록 웃었다. 카와니시는 그때 아주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음에도, 아마도 어딘가에서 기억하고 있었던 그 이름 몇 자를 그에게 대입하고 있었으리라.

 

편의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거의 매일 그를 만났다. 그는 주로 늦지 않은 밤에 와서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물 같은 것들을 사서 가고는 했다. 대화라고는 형식적인 것이 전부였다. 수고하세요. 단정한 목소리로 말하고 나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카와니시는 조금씩 그를 친근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사실 그가 이 근방에서 제법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그보다 조금 더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다.

 

그 즈음에 어떻게 알았는지 그 남자가 카와니시를 찾아온 것이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카와니시를 설득하기 위해 온 목적이 너무 빤했다. 그는 이 동네에 며칠간 머물면서 끊임없이 카와니시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는 카와니시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을 영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그 이유란 하찮고 유치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조금 다르게 나고 자란 카와니시에게 가장 불편했던 것은 아버지가 저지른 과거와 현재의 모든 일과 그의 아들이라는 꼬리표였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사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카와니시의 말을 그는 역시나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영업 방해하지 말고 이만 가지 그래요.”

너 안 데려가면 내 모가지가 잘릴 지경인데 어떻게 가냐.”

……그런다고 안 가요.”

 

 

손님이 없어 한가한 편의점 벽에 기대 그는 카와니시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저 갈 곳이 없어 배회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적어도 카와니시에겐 그렇게 보였다. 카와니시는 뚱한 표정으로 유리창 밖을 내다본다. 그가 올 시간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번 일 그래도 다 수습됐어. 회장님도 혐의 풀려서 다시 나왔고. 너만 돌아가면 모든 게 완벽해.”

혐의가 풀리긴 무슨. 돈으로 매수했겠죠. 그 인간 특기잖아요.”

그렇게라도 안했으면 우리 식구들 전부 실업자 돼서 굶어 죽었을 걸.”

그 잘난 식구들 지키겠다고 뿌린 피가 몇인데요.”

……그래, 인정. 그래도 이번엔 아예 꼬리를 잘랐어. 그쪽으로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회장님도 하나씩 손 떼고 있으시고, 다 너 위해서.”

 

 

카와니시가 인상을 썼다. 그런 이야기에는 넌더리가 났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필요할 땐 실컷 써먹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무 뽑아내듯 뽑아서 버리는 관습은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온 고질적인 악습이었다. 카와니시는 그런 모든 것을 부정했다. 자신만이라도 붉게 젖은 손을 씻고 싶어 했다. 그 꼬리도 자르면서 식구가 아닌 완벽한 타인은 또 갈 곳을 잃고 방황하거나 길을 잃거나, 그것도 아니면 죽을 게 분명했다. 손에 묻힌 피와 그간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자행해온 폭력은 그런 식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카와니시는 그러나 더 말을 않았다. 가장 가까이서 폭력에 똑바로 대응하지 못하고 숨죽인 채 숨어있는 자신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기대고 있던 등을 펼치고 그가 기지개를 켰다. 카와니시는 힐끔 시계를 보았다. 남자가 가고 나면 곧장 이름 모를 그가 올 것이었다. 그가 카와니시에게 인사를 건넨다. 다음에 또 올게. 그만 오라는 불평스러운 말은 결국 하지 못했다. 그 역시 식구라는 미명 하에 갇힌 희생자일 뿐이다. 조직 내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희생의 꼬리를 모조리 쳐내지 않는 이상 카와니시의 아버지가 부리는 그 회사에는 유토피아 따위 존재할 리 없었다. 카와니시는 물끄러미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온다. 그는 늘 비슷한 색깔의 옷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꽂고 나타났다. 그러고 나서 자연스럽게 냉장 코너로 다가가 오늘 남은 도시락과 샌드위치를 구경한다. 딱 오 분 정도, 깊게 고민한 이후에는 더 망설일 것 없는 걸음으로 카운터까지 다가왔다. 카와니시는 미리 스캐너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물건을 쥐는 손은 느렸다. 아마도 그가 더 곁에 있었으면 하는 초라한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기.”

 

 

카와니시는 제 눈을 의심했다. 여느 때처럼 형식적으로 금액을 말하고,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건네는 딱딱한 대화가 이어져야 할 자리에 카와니시의 목소리가 들어찼다. 주머니를 뒤적이던 그가 고개를 든다. 그의 반듯한 이마 위, 아무렇게나 붙여놓은 반창고 아래로 핏물이 졸졸 새고 있었다.

 

 

머리에서 피 나는데요.”

.”

 

 

카와니시는 적잖게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흰 손가락에 빨간 피가 덕지덕지 묻었음에도 그는 태연자약한 태도로 주변을 살폈다. 아마 닦을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이리라. 카와니시는 서랍에 방치되어 있던 물티슈와 휴지를 그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매끄러운 음성이 허공을 타고 흘렀다. 카와니시는 홀로 시간이 멈춘 듯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늘 상처투성이였다. 지금 같이 쌀쌀한 때에는 늘 긴 옷을 걸치고 다녀서 드러나진 않았지만,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반팔만 입고 다니던 그의 팔뚝에 여기저기 난 상처들을 카와니시는 기억하고 있었다. 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하는 그는 많이 다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납득하고 있었지만 유독 피를 많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뺨에 가느다랗게 남은 흉터는 불과 보름 전, 짙은 핏방울을 맺고 있던 자리에 생긴 것이었다.

 

 

엉망이네요.”

 

 

무심코 카와니시가 그런 말을 뱉었다. 건조한 목소리에 나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그가 고개를 돌린다. 엉망이었지만 그럼에도 맑은 눈동자에 마음이 혹한다.

 

 

?”

……얼굴이.”

 

 

그가 반문했다. 카와니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홀린 듯 말을 이었다. 그는 분명히 기묘했다. 사연이 있는 듯 없는 듯 무언가에 초연한 그 표정도 기이했다. 무슨 뜻이에요, 그거. 카와니시는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 뾰족한 눈매에 대고 느릿느릿 대답했다.

 

 

험한 일 하시나 봐요.”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얼기 시작했다. 슬슬 차가워지는 바깥 공기만큼이나 쓸쓸한 얼굴을 했다. 그럼에도 카와니시는 그가 꼭 불빛 같다고 생각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게, 꼭 이정표 같은 사람이 될 것 같다고 그는 아주 막연한 생각에 잠겼다.

 

대충 인사를 마치고 그가 서둘러 편의점을 나갔다. 홀로 남은 카와니시는 그 침묵 속에서 조금씩 짙어지는 어둠을 한 발자국 내딛었다. 이상한 기분에 카와니시는 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 * *

 

 

 

 

 

세미 에이타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공사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온몸에 상처를 달고 다닌다고 변명하기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카와니시는 그가 아버지가 부리던 수족들과 다름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오해는 얼마 가지 못해 깨끗하게 지워졌다. 언젠가 인근 고등학교 앞을 배회하고 있는 그를 본 적 있는데, 그것은 자신보다 연약한 먹잇감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한 충실한 감시였다. 이런 일을 하는 이유를 물었던 말에 세미는 밝게 웃으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지켜주고 싶다는 맑은 대답을 늘어놓았다.

 

카와니시는 그게 좀 어이도 없고 우스웠다. 동시에 연민도 들었다. 자기혐오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정작 자신도 누군가에게 휩쓸린다면 남는 것 없이 모두 잃고 바닥까지 떨어질 약자였으면서 차라리 그보다 나은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는 그 솔직한 소망에 카와니시는 이물감을 느꼈다. 그게 위선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애초부터 그렇게 살 수 없다. 선의란 것엔 늘 인간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으며 모든 행위와 사고에 대가가 없는 것은 없었다. 적어도 카와니시가 살아온 자리는 그랬다. 그래서 그에게 세미는 아주 낯설고 위태로운 존재였다.

 

세미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의문은 더 커졌다. 카와니시의 배경과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이 그를 저렇게까지 내몰고 있는 것일까. 고된 하루를 보내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 쓰러져 잠에 들어도 모자랄 그의 일상을, 무엇이 그렇게까지 채찍질하고 있는 것일까. 의뭉스러운 물음표가 졸졸 카와니시를 쫓아다녔다.

 

세미는 억척같이 살았지만 기묘했다. 그 괴리에서 오는 낯선 감정에 카와니시는 조금씩 젖고 있었다.

 

 

나 잘렸다.”

 

 

어김없이 세미는 편의점을 찾았다. 그 즈음에는 필요에 의한 대화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사이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 날도 그랬다. 모든 게 똑같이 흐르고 있었다. 세미의 손에 들린 게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따위가 아니라 캔 맥주와 스낵이 들려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모두 같았다.

 

 

왜요?”

 

 

카와니시는 부러 시큰둥하게 물었다. 사실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오늘도 좀 다쳐서.”

많이 다쳤어요?”

아니, 그냥 긁혔어. 살짝.”

 

 

세미는 배시시 웃었다. 그 낯에 대고 카와니시는 할 말이 없어졌다.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묻고 싶었으나 일부러 꾹 참았다. 카와니시는 세미가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기를 바랐다. 별로 의욕 없는 목소리로 그의 목소리에 불평을 보탠다.

 

 

공사 현장인데 사람이 좀 다쳤다고 그렇게 막 잘라도 돼요?”

 

 

세미는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또 웃었다. 그는 잘 웃는다. 그러나 카와니시는 그 너머에 있는 조금 다른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세미가 그토록 맑았던 이유는 비단 그가 활짝 웃기 때문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가 속으로 품고 있는 포부는 아마도 그것보다 훨씬 숭고한 것이었을 터였다.

 

카와니시는 내내 세미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영수증을 건네다가 다시 망설인다. 세미가 예의 투명한 눈동자로 카와니시를 주시했다. 카와니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30분만 기다릴래요?”

 

 

별로 특별한 이유가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카와니시에게 세미는 정체를 모를 기이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유일하게 호기심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불투명한 연못 위로 잔잔하게 파동이 내려앉는다. 카와니시는 타닥타닥 불규칙하게 타오르고 있는 세미의 곁에 내려앉았다.

 

 

곧 끝나요. 데려다줄게요, 집에.”

 

 

따뜻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보다 뜨거운 온도에 날개를 데이면서도 그것이 고통을 모르게 할 만큼 미련한 감정임을 깨달았을 때에는, 아마도 이미 늦은 때일 것이다.

 

 

됐어.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피곤할 텐데 너도 집 가야지.”

지켜주고 싶어서요.”

 

 

그러나 카와니시는 그것을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에이타 씨의 미래를.”

 

 

무심코 뱉은 말에는 사실 카와니시의 진심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세미도 그것을 아는지 더 말을 않았다. 잠깐의 침묵 동안 카와니시는 다시 생각으로 잠수한다. 세미 에이타는 분명히 특이한 사람이었다. 카와니시가 살았던 인생의 위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던 이질적인 존재다. 그래서 끌렸던 것이라고 변명하기엔 카와니시가 가진 감정의 정체가 너무나 불분명했다.

 

아마도, 이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훌쩍 편의점을 나서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카와니시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 * *

 

 

 

 

 

카와니시가 그 이름을 기억해낸 것은 더 나중의 일이었다. 동네를 배회하는 험악한 인상의 인간들을 특히 카와니시는 모조리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익히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전부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카와니시는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자랐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기 직전 아버지가 직접 부리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자들의 얼굴을 잊을 수도 없었다. 카와니시는 대번에 불길함을 느꼈다. 보이지 않던 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에는 매번 저질스러운 이유가 숨어있었다.

 

카와니시를 찾기 위해 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얼마 전에 들었던 이야기로 미루어보아 잘린 꼬리의 일부인 것 같았다. 카와니시는 숨죽이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근방에 순찰차가 늘어난 것은 아마도 저들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카와니시는 세미 에이타의 이름을 떠올렸다. 아마도 아버지의 이름이 처음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했을 즈음에 카와니시를 찾아왔던 남자로부터 얼핏 들었던 이름이었다. 처음엔 설마 했다. 그러다가 마음이 조급해져 카와니시는 학교를 가던 발걸음을 돌려 세미와 헤어졌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 그곳을 방황하다가 카와니시는 도로 느린 걸음을 옮겼다.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을 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연락처도 남겼으니 혹여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전화가 올 것이다. 카와니시는 안일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린 것은 카와니시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때였다. 짧은 새에 몰아친 손님들의 계산을 모두 마치느라 채 받지 못한 낯선 번호를 보고 카와니시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들리는 목소리는 짧고 사무적인 것이었다.

 

 

혹시 세미 에이타 씨 보호자 되시나요?

 

 

수화기 너머로 들린 이름은 그러나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카와니시는 금세 불길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대답할 수 없었다. 입술만 빠끔거렸다. 딱딱한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여보세요? 묘하게 끝이 올라간 그 물음에 카와니시는 겨우 대답했다. 거기 어디에요. 이따금씩 사람의 직감은 소름 끼칠 만큼 정확할 때가 있었다. 인근에 있는 병원의 이름을 듣고 카와니시는 당장 편의점을 뛰쳐나왔다.

 

카와니시는 병원 특유의 냄새를 싫어했다. 은근히 풍기는 죽음의 냄새가 어김없이 그곳을 맴돌고 있었던 탓이다. 카와니시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간 것은 그의 어머니가 불행한 사고로 죽은 날이었다. 교통사고였다. 피를 철철 흘리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카와니시가 병원에 오기 직전 숨을 거뒀다. 카와니시가 볼 수 있었던 것은 하얀 천으로 뒤덮인 사람의 시체와 그 밖으로 삐죽 비어져 나온 피 묻은 손가락이 다였다. 그래서 사실 카와니시는 병적으로 그 장소를 기피했다. 그럼에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세미가 있다는 곳은 응급실이었다. 걸어가도 십오 분이면 도달할 짧은 거리였지만 그마저도 여유가 없어 카와니시는 택시를 탔다. 약품 냄새와 응급실 특유의 분주함 사이로 카와니시는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온통 하얀 침대, 하얀 커튼, 하얀 가운으로 점철된 응급실 안을 돌아다니며 카와니시는 세미를 찾았다. 아찔한 현기증에 걸음을 멈추기도 잠시, 간호사가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세미 에이타 씨 보호자, 맞으신가요?”

 

 

카와니시는 대답할 새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이 필요하단다.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데 저장된 연락처도 마땅한 게 없고, 가족들도 연락이 되는 것 같지 않아 급한 대로 카와니시에게 전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카와니시는 정신없이 동의서에 서명했다. 간호사의 뒤를 따라 세미가 있는 곳으로 조금씩 다가간다. 하얀 침대 위에 누워있는 그는 죽은 듯 눈을 감고 있었다. 피가 곳곳에 흥건하다. 카와니시는 일순 호흡을 멈췄다. 언젠가 보았던 장면과 지금이 미묘하게 겹쳐진다. 수술실로 사라지는 그의 발자취를 카와니시는 결국 쫓지 못했다.

 

 

 

 

 

* * *

 

 

 

 

 

환자분이 자기 몸 상태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무리하게 움직여서 근육이랑 뼈 쪽에 혈관이 터져서 마모된 흔적이 좀 있고요. 아팠을 텐데 왜 병원에 오지를 않았는지……. 출혈량이 많아서 아슬아슬했습니다. 응고인자 투여로 다행히 금방 멎어서 현재는 혈압도 맥박도 정상수치입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혈액 수치가 낮아요. 병이 원인인지는 더 확인해봐야 알겠습니다만 이대로는 더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아마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서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의사가 줄줄 잇는 말은 전부 카와니시의 귓속을 매섭게 파고들었다. 세미는 아프다고 했다. 피가 잘 멈추지 않는 몸이라 그동안 그가 했던 공사장 노동 탓에 몸 안쪽이 많이 다쳤단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일찍 관절염이 오고, 지금 상태로 봤을 때 계속 이대로 두면 서른을 채 넘기지 못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카와니시는 아득해졌다. 온몸에 상처를 두르고 다니던 세미가 어리석어 보였던 지난날을 몹시도 후회했다.

 

진료실을 나와 병실을 향하는 길에 카와니시는 부유하는 생각들에 점령당한 채였다. 뒤늦게 세미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면서도 내내 허전했던 그는 아마도 자신의 병을 모르고 있지 않았을 거였다. 알고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다. 적어도 카와니시가 알고 있는 세미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맑고 순수한 선의를 베풀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가 바라는 삶이 그의 내일에는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카와니시는 생각했다. 그리고 주저앉았다.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세미는 이틀 간 의식이 없었다. 깨어나지 않으려던 건 본인의 의지였는지 외상을 제외하고 크게 다친 곳은 없다는데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카와니시는 일을 그만뒀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병원비를 내고, 카와니시는 세미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삼일 째 되는 날에 카와니시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그는 눈을 떴다. 많이 수척해진 얼굴을 보고도 카와니시는 섣불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세미가 먼저 카와니시를 보고 웃었다. 조금 힘겨워보였지만 그런대로 깨끗한 웃음이었다.

 

 

나 살아있네.”

 

 

그 말엔 카와니시의 호흡 끝이 떨렸다. 후련한 듯 내뱉는 목소리가 어딘가 지쳐 보였다. 감격에 겨운 말투도 아니었다. 마치 죽을 줄 알았다는 것처럼, 왜 이곳에 아직도 살아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세미는 말하고 있었다. 카와니시가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세미는 그러나 카와니시를 바라보지 않았다.

 

 

어떻게 살았지.”

…….”

네가 그랬어?”

…….”

카와니시.”

 

 

꽉 잠긴 목소리에 미미하게 원망이 서린다. 카와니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허망한 눈으로 그의 곁에 앉았다. 세미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그러나 메마른 눈으로 카와니시를 마주본다. 한참 말을 고르던 카와니시가 이내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세미는 표정이 없다. 다 알았구나. 그래서 초연한 얼굴이었다. 절망하고 있는 듯 했다. 아마도 카와니시에겐 숨길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알게 되길 그는 원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카와니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알지 못했다면 더 좋았을 걸. 연락처를 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까. 그냥 그런 일이 있었더라, 그렇게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화제였지 않을까.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세미가 원하지 않을 것을 안다.

 

 

아니, 내가 도와줄게요.”

 

 

그럼에도 카와니시는 다른 것을 버릴 각오를 했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살래요?”

 

 

그 말에 세미는 슬픈 눈을 했다. 그렇게 살아서 달라질 게 뭐가 있어. 세미는 두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퇴원하고 아마도 카와니시와 다시 남이 되어 살아갈 세월 동안 세미는 똑같은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는 살아남는 것 자체에 욕망이 없었다. 그러나 카와니시는 세미에게 내일을 주고 싶었다. 그가 내일을 염원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세미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던 대답임에도 쉽게 그를 놓을 수 없다. 카와니시가 걱정하는 것을 알고 세미는 애써 웃었다. 웃으면서 말했다, 고맙다고.

 

 

 

카와니시는 삼일 만에 집에 돌아갔다. 병원에 세미를 혼자 뒀다. 그가 그러고 싶다고 말했다. 달리 변명할 거리가 없어 카와니시는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그러나 병원을 나서서 집까지 걸어가는 짧은 거리 내내 카와니시는 발을 직직 끌어당기는 무거운 그림자의 존재를 떨쳐내지 못했다.

 

처음엔 아주 맑았고, 두 번째에는 기묘했으며 마침내는 안타깝기까지 했던 그와의 이별을 카와니시는 손가락으로 꼽았다. 퇴원 수속을 밟자마자 아마도 세미는 이곳을 떠날 거라고 카와니시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 * *

 

 

 

 

세미가 퇴원하던 날은 비가 줄줄 내렸다. 카와니시는 세미의 몫까지 우산을 들고 병원 앞에서 기다렸다. 그는 늘 입던 옷을 입고 있었다. 카와니시와 눈을 마주친 세미가 느리게 걸어온다. 카와니시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가온 세미는 못 본 척 카와니시를 지나쳤다. 퍼붓는 폭우 속으로 그는 그대로 발을 디뎠다.

 

 

감기 걸려요.”

 

 

한달음에 달려 카와니시가 세미를 붙잡는다. 가장 얇은 주삿바늘이 꽂혔던 팔뚝 위에는 아마도 반창고가 붙어있을 것이었다. 카와니시는 슬쩍 그 팔뚝을 놓았다. 벌써 축축하게 젖기 시작한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었다. 카와니시는 뒤늦게 우산을 내밀었다. 제 낡은 운동화 앞코만 뚫어져라 바라보던 세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카와니시.”

.”

고마워.”

…….”

그래도 이젠 만날 일 없을 거야.”

 

 

이럴 줄, 알고 있었다.

 

세미는 남에게 무언가를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카와니시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세미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했다. 선뜻 도와주겠다는 카와니시의 손을 뿌리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거였다. 세미는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고독 속에 서서히 잠겨가면서도 누군가의 손을 붙잡지 않았다.

 

 

나는 네가 좋아.”

 

 

세미가 고개를 든다. 쓸쓸하게 웃는 낯에는 진심이 뚝뚝 묻어있었다.

 

 

그래서 더는 너를 못 보겠어.”

……알고 있어요.”

네가 영원히 타인이었으면 좋았을 걸. 근데 그게 그렇게 안 돼, 타이치.”

 

 

카와니시가 손을 뻗는다. 습기를 머금어 무겁게 처진 어깨를 감싸고 빈틈없이 그를 품에 그러안았다. 목덜미에 따뜻한 기운이 내려앉는다. 카와니시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래, 세미는 카와니시에게 불빛이었다. 그래서 따뜻하고 밝았다. 타죽을 것도 모르고 달려들 수밖에 없던 카와니시를 밀어낸 것은 세미였다. 물에서 핀 불꽃은 습기를 머금어 서서히 죽어간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듯 그는 자신의 인생을 부당하게 살려내지 않았다.

 

 

나는 네가 나 때문에 죽어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난 괜찮아요.”

…….”

그러니까 죽지 말아요.”

 

 

세미는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와니시는 그의 손에 우산을 쥐어주었다. 그것을 펼치고 세미는 천천히 등을 돌린다. 빗소리 사이로 그의 발자국 소리가 아득히 멀어져갈 때까지, 안개처럼 피어오른 물빛에 그가 완연히 묻힐 때까지 카와니시는 내내 그곳에 서있었다.

 

카와니시는 그 이후로 세미를 만날 수 없었다. 그는 종적을 감췄다. 더 이상 예전처럼 그가 내려오던 골목길 앞, 기차가 다니는 길에 서서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았다. 며칠을 계속 그곳에 다녔던 카와니시는 딱 한 달을 채우고 그 일을 그만뒀다. 불꽃마저 얼 것 같은 혹한의 계절이 돌아온 때였다.

 

 

 

 

 

* * *

 

 

 

 

 

카와니시의 아버지는 카와니시가 스물여덟 살이 되었을 때 숨을 거뒀다. 카와니시가 아버지의 사업을 잇고자 회사로 다시 돌아온 지 삼 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몸도 정신도 쇠약해진 아버지는 아직 어린 카와니시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했다. 그렇게도 증오했던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은 것에는 어떤 조건이 붙어있었다.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아버지의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업무 교육에 충실할 것, 그리고 어두운 이면을 숨기기 위해 잘라낸 자들을 엄격한 관리 하에 회사로 다시 취직시킬 것. 카와니시는 아버지의 비서로부터 부지런히 일을 배웠다. 더 이상 도망치기만 해서는 변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로소 세미는 자유의 몸이었다. 카와니시는 세미를 쫓던 자들까지 모조리 데려와 돈을 주고 일을 시켰다. 그게 카와니시가 세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너무 궁금할 때면 잠조차 이루지 못했지만 카와니시는 단 한 번도 그를 찾으려 한 적이 없었다. 세미가 카와니시를 밀어냈을 때, 속에서 까맣게 타들어가던 그 마음을 카와니시가 모를 리 없었다.

 

장례식장엔 많은 사람이 오고갔다. 카와니시는 한결같이 그 곁을 지켰다. 별로 다른 의미는 없었다. 온갖 더러운 짓을 일삼은 그 손을 용서한 적도 없다. 그래서 카와니시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았다. 카와니시가 이곳에 돌아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이제야 겨우 삼 대를 걸쳐 온 악습을 마주보고 부술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늦은 저녁까지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달이 둥실 뜬 밤이 되어서야 카와니시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찬 밤공기에 속이 으슬으슬하다. 종일 서있어서 뻣뻣하게 굳은 무릎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카와니시는 의외의 사람을 만났다.

 

카와니시와 마찬가지로 까만 옷을 위아래로 입은 조금 앳된 얼굴의 소년은 아주 먼 옛날의 기억 속에 파묻혀 있다가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세미의 일로 경찰서에 가서 만난 적이 있던 고등학생이었다. 그때에는 고등학생이었으니 이미 성인이 되었을 터다. 그 소년도 카와니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카와니시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툭 던지듯 무신경한 말로 카와니시가 먼저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누가 돌아가셨나 봐요.”

 

 

그 말에 소년은 울컥했다.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카와니시는 메마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소리를 내어 흐느끼기 시작하는 소년의 어깨를 다독여줄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들썩이는 등, 얼굴에 범벅인 눈물을 닦아내지 못하는 주먹을 쥔 손등, 카와니시는 미처 떠올리지 못한 옛 기억을 헤집는다. 그는 잠시 멍해졌다.

 

가까스로 눈물을 멎은 소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카와니시에게 말했다. 같이 가주세요. 카와니시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싶었다. 언젠가 의사가 했던 말이 둥실 떠오른다. 이대로라면 서른 살을 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카와니시보다 꼭 한 살이 많았던 그는 올해로 스물아홉이 되었을 터였다.

 

 

죽지 말라니까.”

 

 

세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처음 카와니시가 그 동네로 이사를 하고, 학교에서 그를 보았던 날 지은 웃음과 아주 닮아있었다. 그곳은 허전했다. 언제나 고독과 싸워야 했던 세미의 일생을 대변하는 것처럼 외로웠다. 그러나 차갑지는 않았다. 불꽃은 스러졌지만 여전히 타오르고 있음을, 그는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뭘 그렇게 열심히 살았대요.”

 

 

카와니시는 마른 웃음을 지었다. 오 년이 지나 다시 만난 그는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 늙지도 아파보이지도 않았다. 아마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카와니시는 천천히 무너지듯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속에서 무언가가 잔잔하게 끓었다.

 

어차피 나보다 못 살 거면서 왜 그렇게 날 밀어냈어요.

 

차마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 한 마디가 목구멍에서 맴돈다. 카와니시는 고개를 숙였다. 단 한 번도 흐른 적 없던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카와니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흐느낌이 조금씩 커졌다. 그러나 그는 끝내 오열하지 못했다.

 

치닫는 겨울, 그 속에서 피어난 불꽃은 그렇게 스러졌다. 다른 것을 집어삼키고 살아야 했던 가냘픈 생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그렇게 꺼졌다. 카와니시에게 불빛이 없는 겨울의 밤은 유난히 추웠다.

 

 

 

 

*

 

 

 

 

세미야 미안해!!!

역시나 분량조절이 안될 것 같아 압축하고 또 압축했더니 이런 게 나와 버렸습니다.

전력 주제였던 상처,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 세미의 이름에서 따온 이야기입니다. ‘네가 있어서 나는 웃을 수 있었고 네가 있기에 내가 가장 행복했었고 너로 인해 내 삶도 살아볼 만했었어.’라는 가사예요. 이야기 속에서는 세미와 카와니시의 심정을 동시에 대변하는 내용이기도 할 것 같네요.

그리 길지 않으면서 또 은근히 길고 무엇보다 지루했을 것 같은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와세미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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