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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세미른

[카와세미] 낙원 2

Ryria 2019. 6. 21. 21:53

※ 인간과 초능력자가 대립하는 세계관으로, 아포칼립스에 가까운 설정들이 등장합니다.

※ 다소 잔인한 묘사, 등장인물들의 죽음 소재가 있습니다.



 

 

 

 

 

세미 에이타는 죽었다.

 

초능력자들을 유인해 리미테이션 건의 결계로 건물 안에 가두고, 우주의 위성에서 떨어뜨린 텅스텐 막대로 그 지역 째 날려버리는 게 최종 목표였던 작전 크레이터에서 실패로 인한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스로 사지에 뛰어들어 죽었다, 말끔하게. 급소는 아니었지만 복부가 찢어져 이미 출혈이 심각했고 마지막에는 그 붉은 머리의 초능력자가 쏜 총알에 머리를 꿰뚫렸다. 내장 안으로 꾸역꾸역 피가 밀려드는 감각, 차가운 금속이 피부를 찢고 뼈를 뚫고 마침내 뇌까지 관통하는 잔혹한 느낌이 소름끼칠 만큼 선연했다. 길게 산 인생은 아니었지만 주마등처럼 그리울 얼굴들이 스쳤고 짧게나마 인류의 승리를 품은 희망찬 미래도 보았다.

 

그건 분명히 죽음이었다.

 

하얀 천장, 그보다 더 하얀 빛 아래에서 눈을 떴을 때 여기가 저승인지 이승인지 도무지 구분할 도리가 없었던 것도, 세미는 분명히 죽음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멀어졌던 감각이 하나씩 돌아온다. 허여멀건 빛이 눈동자로 들어오기에 눈이 부셔 손등으로 시야를 가렸더니 이제는 옆에서 삑삑 규칙적인 기계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이상한 냄새가 난다. 병원에서 맡던 것과 비슷했지만 더 건조하고 추웠다. 그래, 추웠다. 이것도 분명 감각이었다.

 

세미는 누운 채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았다. 수술대 같이 생긴 침대 근처에 거대하고 복잡해 보이는 기계가 빙 둘러서있었다.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단단한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다. 현기증 탓에 하마터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뻔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침대를 손바닥으로 디딘 채 세미는 주의 깊게 사방을 살폈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간다느니, 영혼만 빠져나와 윤회의 길을 걷는다느니 천국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느니, 그런 것들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장소였다. 병원이라기엔 지나치게 조용하다. 이 넓은 방에 홀로 덩그러니 누워있던 것도 수상쩍었다. 세미는 맨발로 천천히 바닥을 딛고 섰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곧장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넘어지면서 침대에 팔꿈치를 부딪쳤는데 아프지 않은 걸 보니 아직 통각은 돌아오지 않았구나 싶었다. 몇 번이나 다시 일어서려다 실패했다. 분명 하체에 붙어있는 건 세미 본인의 다리였는데, 꼭 자기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틈으로 들어온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냥 얌전히 누워있지.”

…….”

뭐가 그렇게 급해서 깼어.”

 

 

얼떨떨할 새도 없었다. 하얀 가운을 걸치고 차분히 걸어오는 그를 보면서 세미는 겨우 이게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말문이 막혀 입 밖으로 질문이 튀어나오지 못했다. 세미의 당황한 시선을 보고 야마가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는 손에 쥔 차트를 세심하게 살피다가 여전히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세미를 일으킨다. 그 바람에 내려온 안경을 검지로 밀어올리곤 침대에 걸터앉은 세미의 상태를 면밀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감각이 돌아왔는지 확인하고, 시력이나 청력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테스트를 마치고 혈압과 맥박, 기억과 사고력의 정상 범위를 측정한 후에야 야마가타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퍽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완벽하게 정상이잖아. 아픈 데는 없어?”

 

 

그는 마치 환자를 대하듯 세미를 보고 있었다. 세미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가 없어 스스로 허벅지를 맵게 꼬집었다. 뒤늦게 돌아온 촉각이 예민하게 통증을 감지했다. 비명도 억누르고서 세미는 참담한 얼굴을 했다. 살아있다.

 

살아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로 세미는 살아있었다.

 

 

……야마가타.”

, 궁금한 게 많겠지. 일단 자리를 좀 옮길까.”

 

 

야마가타는 세미에게 옷 한 벌을 건넸다. 세미는 수의 같은 것을 입고 있었으므로, 아마 주위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보기에 좋은 환자복을 들고서 세미는 멀뚱히 야마가타를 바라보았다. 웃으며 문을 연 그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는 말을 끝으로 실험실을 나갔다.

 

궁금한 게 많다. 아니,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었다.

 

나는 산 사람인가, 죽은 사람인가.

 

아니, 죽은 사람이라면 여기에 이렇게 서있을 수 없다. 그랬으니 이것은 아주 바보 같은 질문이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이 생긴다. 어째서 나는 살아있는가. 혹은 그때 느꼈던 죽음의 감촉은 사실 환상이었던가.

 

두 가지 다 확신할 수 없었다. 거짓이나 환상으로 치부하기에 너무나 또렷한 기억들이다. 세미는 야마가타가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기가 병원이었다면 세미가 가장 처음 봤을 사람은 그가 아니라 담당의인 스가와라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는 병원이 아니다. 야마가타는 연구원이었으므로 이곳은 에덴 본부에 있는 생체기술연구부의 실험실일 것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불길한 예감이 꾸역꾸역 차올랐다.

 

 

 

 

세미가 야마가타와 함께 향한 곳은 본부 지하에 작게 마련된 납골당이었다. 전쟁 중이라 모든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러줄 수가 없어 만들어놓은 공간이었다. 유골은 전부 태워 작은 항아리에 보관한 채로 벽장에 빼곡하게 쌓아두지만 시신마저 발견하지 못한 사망자는 납골당 중앙에 서있는 커다란 비석에 이름만 올릴 수 있었다. 세미는 이곳에 들어설 때부터 줄곧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야마가타가 여기까지 직접 세미를 데려온 것은 아마도, 본인의 눈으로 모든 진실을 확인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그것은 충격적이었다. 그럼에도 의외로 세미는 담담했다. 높이를 측정할 수 없이 커다란 비석 오른쪽 구석에 정확하게 이름이 새겨져있다. 세미 에이타瀨見英太, 흔한 이름은 아니었으니 저기에 적힌 이름은 바로 여기, 넋 나간 얼굴로 서있는 세미 본인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죽은 거네.”

…….”

그런데 왜…….”

 

 

세미는 차분히 비석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차가운 감촉에 어깨가 바르르 떨린다. 그의 말대로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정작 입은 떨어지질 않았다. 세미의 질문을 기다리던 야마가타가 먼저 운을 뗐다.

 

 

에덴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에 인구 보존 계획이 있어.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서, 문명을 이룰 인구가 부족하니까 지금 있는 사람들이라도 죽게 내버려두지 말자, 뭐 그런 취지야.”

 

 

그게 설마 이런 방식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야마가타가 사족을 붙였다. 세미는 멍하니 서서 비석에 새겨진 제 이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죽었다가 살아났고, 그러나 지금 세계에서 여전히 자신은 죽어있는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죽기 직전에는 후회할 것이 그렇게 많았는데 다시 살고 보니 정작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끝없는 공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으음, 그게 좀 복잡한데. 사실 네가 최초의 성공 사례야.”

 

 

야마가타가 난감하게 웃었다. 연구의 책임자라고 해도 그는 일개 연구원이었을 테니, 세미의 추후 거취에 대해서 아는 게 없을 것이다.

 

인구 보존 계획은 아직 실행 가능성이 과반을 넘지 않는 연구라고 했다. 죽었던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데에는 실험적인 문제 말고도 윤리적으로 걸리는 부분이 있어 진행 과정이 아주 조심스러웠단다. 생체 활동의 속도를 평범한 사람보다 월등히 빠르게 할 수 있는 호르몬, 기타 생명활동에 필요한 효소들을 포함한 특수 약물을 주사해 괴사한 조직이나 이미 죽은 장기들의 활동을 강제로 재개시킬 수 있었다고. 가장 큰 문제는 심장이 멈춤으로써 활동을 정지한 뇌의 손상이었는데, 그건 솔직히 운이라고 야마가타는 털어놓았다. 사람 아니, 시신마다 약물이 작용하는 범위와 시간차가 아주 달라서 죽었던 사람의 신체가 다시 생명을 얻는 것 자체가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은 실험이었다. 그랬으니 세미가 최초인 것이다, 꽤 오래 전부터 연구를 지속했음에도.

 

 

인구 보존 계획이라고는 해도……. 초능력자와 싸울 사람이 부족해서 내놓은 연구일 테니 다시 전장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

…….”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한테 하는 말치고는 좀 껄끄럽지만.”

 

 

세미는 말을 잃었다. 이브 쪽에 어떤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크레이터는 너무 무모한 작전이라고 말렸던 게 뒤늦게 기억이 나서 세미는 조금 억울해졌다. 실패할 확률이 높았고, 그래서 다른 요원들이라도 살리자고 스스로 건물 안에 뛰어들었는데 그렇게 작전 중 사망한 제 몸에 이상한 약물 따위를 넣어 실험에 사용했다니 그것보다 비참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 같은 건 나지 않았다. 목이 아프거나 코끝이 찡해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억울하긴 했는데, 감정은 시체처럼 요동조차 없이 고요했다.

 

이것도 예의 그 연구의 결과물 중 하나인 것이다. 몸뚱이와 뇌만 살려내서 자신들이 얼마든지 전쟁에서 소모할 수 있는 무기로 만드는 것, 그게 시설에서 직접 진행한 인구 보존 계획의 실체였다.

 

어쩔 수 없다는 것쯤은 이해한다. 인간은 정말로 궁지에 몰렸으니까. 초능력자 하나를 죽이기 위해 두 자리 수의 인간이 다치거나 죽는다. 숫자는 그쪽이 월등히 적었지만 절대 인간에게 유리한 전쟁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소중한 사람을 너무나 많이 잃었고, 그랬기에 더 이상 지구에서 인류의 삶에는 희망이 없음을 진즉 깨달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비인간적인 행위까지 자행하며 승리하려 한다. 인간이 두 발을 디디고 설 수 있는 땅을 쟁취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세미는 원하지 않았다. 더 이상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누군가가 피 흘리며 죽는 장면 따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살았다. 극악의 확률을 뚫고, 유일한 성공작이 되었다.

 

 

……좀 들어가서 쉴래? 내 방에 가있어도 돼.”

 

 

야마가타가 그렇게 물었다. 세미의 표정이 처참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단 것을, 특히 세미의 경우는 더 그렇다는 것을 야마가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미는 고개를 젓는다.

 

 

그럼 나는 그냥 죽은 사람으로 사는 거야?”

 

 

대신 절망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은 네 재생 사실을 위에 보고했어. 오늘 내로 네 거취가 결정될 거야. 그러니까 에이타.”

 

 

야마가타가 입술을 달싹였다. 무어라 말을 이어보려다 결국 입을 꾹 다문다. 세미는 손바닥으로 지친 얼굴 위를 문질렀다. 한숨조차 나오지 않는다.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이 허무하고 우울했다.

 

 

미안.”

 

 

납골당을 나와 야마가타의 연구실로 향하는 길에 야마가타가 불쑥 사과를 건넸다. 세미는 나란히 걷고 있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네가 살아나지 않기를 바랐어.”

 

 

많은 것을 참고 있는 얼굴과 다르게 목소리는 평온했다. 담담한 말투에 세미는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야마가타는 스가와라와 함께 세미의 훈련소 동기였다. 훈련소에서 기초 훈련을 수료하면서 생긴 오랜 인연인 것이다. 분야는 달랐지만 인연의 끈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사람이 죽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인 이곳에서조차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었다. 그랬으니 본부에 당도한 세미의 시신을 보고 그 두 사람이 했을 생각들을 상상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야마가타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팀이 맡은 연구 진행 과정에서 죽었던 친구가 다시 살아났지만, 그건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사람의 전투요원도 아쉬운 상황이었으니 간단한 검사를 마치면 세미는 곧장 전장으로 불려나갈 터였다. 한 번 죽은 사람을 다시 사지로 내모는 일이었으므로, 야마가타는 이미 자책에 짓눌려있다.

 

그를 위로하듯 세미가 야마가타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네 탓 안 해, 하야토.”

 

 

야마가타의 연구실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정장을 입고 트랜시버까지 착용한 사람들도 있는 걸 보니 세미의 신변을 양도받기 위해 온 모양이었다. 야마가타는 느리게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야마가타를 한 번 바라본 세미는 그저 웃는 얼굴로 그들을 향해 계속 걸었다.

 

 

 

 

 

 

*

 

 

 

 

 

 

카와니시는 무사해?”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 세미가 그렇게 물었다. 기계에 잡힌 신호로부터 영상을 복구하던 스가와라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내가 주치의는 아니지만, 허벅지가 좀 부었었고 추락하다가 어깨가 빠진 것만 빼면 멀쩡해. 지금쯤은 다 나았겠지. 다만, 너 죽은 이후로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게 되어버려서.”

……하하.”

……이 상황에 웃는 거 보니 너도 제정신은 아닌데.”

 

 

평소 일상이란 것 없이 쫓기듯 살았던 탓에 세미는 자신의 삶이 한 번도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런데 주치의로부터 저런 소릴 들으니 정말이지 아주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 것이다. 허벅지가 붓고 어깨가 빠졌는데 멀쩡하다니,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었다면 누가 들어도 기함할 소리였다.

 

죽었던 세미가 깨어난 것은 작전이 있었던 날로부터 벌써 두 달가량이 지난 후였다. 일주일만 더 죽은 상태로 있었다면 실험을 중단하고 시신을 화장시킬 예정이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살았으니 다행인 셈인데, 마냥 기뻐할 수도 없어 찝찝하다고 스가와라가 투덜거렸다. 어느 정도 되살아난 감각에 적응한 세미는 그 목소리에 슬쩍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도 결과는 다 양호하네. 딱히 아픈 곳도 없지? 약물 부작용도 거의 없어서 지내는 데에는 문제없을 것 같아.”

. 고마워.”

무리하지 마. 전혀 고마울 일 아니니까.”

 

 

스가와라는 단호했다. 죽은 줄 알았던 세미가 되살아난 것을 보고 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세미를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힘을 주어 어깨를 붙든 흰 손등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깨어나서도 내내 어리둥절해 울음조차 나지 않았는데, 그 순간만큼은 눈물이 날 뻔해서 세미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야 했다.

 

스가와라는 자처해서 다시 한 번 세미의 주치의가 되기로 했다. 특수 약물을 사용한 것치고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체 활동과 거의 차이가 없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장 뭘 하는 데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거란 이야기에 세미는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위쪽에서도 꽤 당황스러운 반응이야. 전혀 성공할 줄 몰랐었는지, 네가 되살아난 이야기를 듣고 다들 우왕좌왕하고 있어.”

야마가타에게 들었어.”

그래서 대처가 좀 늦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 이건 야마가타가 서면으로 보내준 주의사항이야.”

 

 

프린터기에서 스가와라가 종이뭉치를 꺼냈다. 주의사항이라더니 꽤 두께가 있어 세미는 긴장했는데, 대부분 전문용어가 사용된 복잡한 서류라 사실 읽을 수는 없었다. 곤란한 표정의 세미를 바라보고 스가와라가 대신 몇 가지 내용들을 해석해주었다.

 

아주 단순하고도 복잡한 내용이었다. 첫 번째, 체내에서 약물이 정상적인 효과를 내는 시간은 최대 72시간으로, 그 이상 추가 약물 투여가 없으면 강제로 활성화되어있던 장기와 조직들이 순식간에 괴사한다. 연구 보고서에는 48시간마다 추가로 약물을 투여한다는 항목을 필수 사항으로 체크해두었다. 약물을 다룰 수 있는 건 생체기술연구소에 소속된 사람뿐이었으니 아마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야마가타가 도와줄 거란 설명도 덧붙였다. 만약 약물의 추가 투여가 진행되지 않아 조직이 괴사한 경우, 약물의 부작용으로 신체가 녹기 때문에 다시 소생이 어렵다. 어차피 이 연구의 유일한 성공작은 세미뿐이었으니 모든 연구원과 의료팀이 붙어 케어해줄 예정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것 없다고 스가와라가 말을 맺었다.

 

 

신경 쓸 것 없는 것치곤 좀 무서운데. 최대 72시간 안에 약물을 투여 받지 못하면 그대로 죽는다는 거지? 아니, 이미 한 번 죽었으니 죽는 것도 아닌가.”

너 괜찮아?”

 

 

스가와라가 걱정스러운 눈을 했다. 세미 스스로도 생각보다 담담한 자신의 태도에 놀라고는 있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꽤나 위태로워보였던 모양이다. 걱정하지 말라는 눈으로 세미가 웃어보였다.

 

이대로 전장에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면 세미는 순순히 응해줄 생각이었다. 세미는 공식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이고, 그래서 다시 요원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절차가 있겠지만 그래도 필요하다면, 인간이 이기기 위해, 인간이 살 수 있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다시 죽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아쉬운 것은, 예전처럼 카와니시와 파트너로 있을 수 없다는 것 정도였다.

 

시설에서는 세미의 죽음으로 세미가 되살아난 사실을 숨길 것이다. 실험이 외부에 알려지면 결과야 어떻든 일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게 자명했기 때문이다. 세미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때,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카와니시는 세미가 죽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였다. 그에게 더한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되살아난 이후의 삶은, 세미 혼자서만 지고 가려 했다.

 

검사실 바깥에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세미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은밀하게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본부장 직속의 경호원들이 늘 따라다녔다. 스가와라는 온통 시커먼 옷을 입고 다니는 그들이 꺼림칙해서 싫다고 했다. 세미를 실험의 성과 그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그들이 달갑지 않은 건 세미도 마찬가지였지만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다음은 어디로 갈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향후 거취를 논의하기 위해 본부장과 직접 대화할 자리가 마련되어있지는 않을까.

 

철저한 보안과 감시 아래 세미가 도착한 곳은 온통 하얀 방이었다. 한쪽 벽이 전면유리로 되어있었지만 벽 너머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취조실에 사용하는 반투명 유리로 제작된 모양이다. 특수한 목적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형태였다. 그렇다면 저 반투명 유리 너머에는 누가 있을까. 세미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최고 결정권자인 본부장일까, 연구소장 내지는 연구의 관계자들일까.

 

뭔가 질문할 새도 없었다. 반투명 유리를 등진 의자에 세미는 앉은 채로 묶였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세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이건 대체 무슨 검사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누런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세미의 팔뚝에 꽂고 곧장 주입했다. 따가운 느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빠르게 세미에게서 물러선 사람들이 물 빠지듯 방 바깥으로 나갔다.

 

비교적 넓은 방 안에 세미 혼자 남았다. 등 뒤에서 반투명 유리 너머로 자신을 보고 있을 사람들의 의도를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야마가타, 스가와라를 거치면서 안정되어있던 상태가 급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불안했다. 모든 게 낯선 것들뿐이라 무섭고 두려웠다.

 

세미에게 주사한 약은 일종의 마취제였다. 서서히 감각이 마비되고 매운 공기로부터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는 이 기분은 스가와라에게 간단한 수술을 받을 때의 느낌과 똑같았다. 하지만 강도가 더 세다. 단단하게 묶인 팔목과 발목에서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이 마비된 만큼 다른 부위가 예민해졌다. 불안이 고조될수록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성대가 얼어 떨리질 않았다.

 

세미가 마주보고 앉은 하얀 벽의 중간이 갈라졌다. 비밀의 문이 열리듯 좌우로 미끄러진 흰 벽 아래에 새까만 무언가가 나타난다. 세미의 시력이 정상이라면, 세미를 똑바로 겨누고 있는 저것들은 총을 포함한 각종 화기들이었다.

 

노란 불빛이 번개가 치듯 번쩍였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그게 정신을 잃기 전 세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불투명한 유리문은 카드를 접촉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자동문이었다. 야마가타는 연구소의 직원으로 마땅히 문을 출입할 권리가 있었지만 직원 카드를 접촉하는 대신 근처에 있던 접이식 의자를 집어던져 유리를 깨버렸다. 뒤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줄줄이 사탕처럼 딸려왔지만 야마가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보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사람 여럿이 모여 서있다. 출입문에서 들린 소란에 그들 모두의 눈동자가 야마가타를 향한다. 그러나 야마가타는 반투명 유리 너머 의자에 묶인 채 앉아있는 세미의 뒤통수를 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이렇게 멋대로 들어오시면,”

저리 안 꺼져? 소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습니까!”

관계자 외 출입금지입니다. 지금 당장,”

나 관계자야!”

 

 

고요하던 실내가 시끌벅적해지자 연구소장이 직접 나서 경호원들을 바깥으로 물렸다. 관계자 맞으니 굳이 끌고 나가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에 그들은 얌전히 야마가타를 두고 밖으로 나갔다. 야마가타는 눈을 부릅뜨고 씩씩거렸다. 연구소장이 뒤늦게 한숨을 내쉰다.

 

 

……이래서 자네를 안 부른 건데.”

뭐가 잘못된 건지는 아시는 모양이네요.”

아니, 이런 상황에서까지 쓸데없는 윤리를 내세워서 잔소리할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쓸데없다니?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한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저런 짓을 해놓고서는, 제정신입니까?”

 

 

반투명 유리의 맞은편에는 시커먼 총기들이 나란히 줄을 서있었다. 이 방은 애초에 무기들의 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소다. 그런 곳 한가운데에 마련해둔 의자에 사람을 앉혀놓고 살인무기를 아무렇지 않게 쏴대는 게 사람이 할 짓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야마가타는 속에서 매섭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연구소장의 답변을 기다렸다. 사실 그의 답변이란 건 아주 뻔하고도 우스울 것이라 기다릴 것도 없었지만, 상사에게 지키는 마지막 예의였다.

 

세미는 심리적으로 아주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는 원체 강한 사람이라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건 아주 비참하고 기분 더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호전되는 것을 본 이후에 실험을 진행해도 늦지 않을 텐데 초능력자에게 이기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인 자들에겐 그 정도의 인내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야마가타는 화가 났다.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에게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짓을 마음껏 저지르는 이곳의 사람들이 혐오스러웠다.

 

 

어차피 한 번 죽었던 사람이고, 그래도 통증은 있을 테니 전신에 마취제도 주사했어. 온몸에 구멍이 뚫려도 금세 나아 흉터조차 남지 않을 텐데 도대체 무슨 설명을 해야 한다는 거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럼 어떻게 할까. 전장에 나가기 전에 당신의 재생능력을 테스트해야 하니 지금부터 우리는 당신의 이마, 정수리, 심장, 대퇴, 전완, 어깨와 복부까지 온몸의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총알로 뚫어버릴 예정인데 이에 동의한 후 얌전히 앉아있으라고 부탁하면 되는 건가?”

 

 

뒷목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고 야마가타는 입을 다물었다. 저게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린지 되감아보는데 구역질이 났다. 연구소장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쉴 새 없이 말을 퍼부었다.

 

 

동의하지 않으면? 자신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걸 받아들일 인간이 어디 있겠어, 그렇지 않은가? 야마가타 자네가 저 자에게 직접 비정상적인 회복력에 대해 말했을 리는 없으니 전장에 나가 마주친 초능력자에게 팔 한 짝이라도 썰리고 나서야 자신의 몸에 대해 알게 될 텐데, 그때의 충격은 누가 보상해줄 거지?”

그건……!”

알아, 저 자는 자네의 친구였으니 아무리 다쳐도 절대 죽지 않는 몸이란 걸 그가 알게 되는 게 두려웠겠지. 무엇보다 저 실험작은 자네의 손에서 탄생한 것 아닌가? 자네는 연구원이 되기에 무르고 인간적이야. 야마가타 자네가 느낄 죄책감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어.”

 

 

그가 섬뜩하게 웃었다. 야마가타는 사색이 된 채로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래서 내가 대신 해줬지 않은가. 저것 봐, 옷은 저렇게 피투성이 넝마가 되었는데 몸은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지. 완벽한 성공작이고, 자네의 첫 성과야. 감동적이지 않은가?”

 

 

야마가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이 꺾이려는 걸 억지로 세워서, 야마가타는 겨우 의자에 늘어진 세미의 뒷모습을 똑바로 보았다. 머리카락이고 흰 피부가 온통 피투성이다. 그러나 상처는 어디에도 없었다. 옷이 다 찢어져 구멍 숭숭 뚫린 거적처럼 변했어도 세미는 멀쩡했다. 끔찍하다. 파랗게 질려서 야마가타는 덜덜 떨었다.

 

내가 세미를 저렇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귀를 틀어막은 채로 주저앉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여기서 서둘러 세미를 데리고 나가야 한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기절해있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온몸이 탄환에 뚫렸어도 살아있는 제 기이한 몸뚱이를 직접 목격하지 않아도 되어서. 아니, 이런 상황에 다행이란 가정은 있을 수 없다. 야마가타는 강하게 다리를 딛고 서서 곧장 바닥에 널브러져있던 철제 의자를 들었다. 보폭이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반투명 유리를 향해 의자의 다리를 겨냥하고 냅다 집어던졌다. 특수 목적으로 제작된 유리라 이 정도 충격에는 부서지지 않는다. 가쁜 숨을 가까스로 가다듬고 야마가타는 방을 나섰다. 바로 옆에 세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 역시 경호 병력이 줄을 서있었지만 야마가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건장한 사람들의 팔뚝에 길이 막힐 때마다 야마가타는 온힘을 다해 뿌리쳤다. 문에 가까이 닿으려 하면 곧장 한 발이 물려서 도저히 손잡이에 닿을 수가 없었다. 와중에 안쪽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굉음이 들렸다. 어깨를 움찔 떤 야마가타가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 미친 새끼들아!”

 

 

오열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야마가타는 팔뚝과 다리가 잡혀 질질 끌려갔다. 세미를 빼내야 한다. 데리고 가야 한다. 목 끝까지 설움이 북받쳐 이제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기운이 다 빠져 바닥을 기는데 등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하는 짓들이야, 이게.”

 

 

익숙한 음성이었다. 동시에 야마가타는 고개를 돌렸다. 한달음에 이곳까지 달려왔는지 숨이 벅찬 스가와라 옆에 이제 막 임무지에서 돌아왔을 오이카와가 버티고 서있었다.

 

 

니들 사람이 아니라 초능력자랑 싸우라고 가르친 거야. 당장 걔 놔주고 꺼져.”

하지만…….”

명령불복종?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오이카와가 낮은 음성으로 으르렁거렸다. 야마가타를 붙들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거리를 벌려 멀어진다. 순식간에 문 앞이 휑해졌다. 야마가타는 허겁지겁 일어서서 묵직한 문을 열어젖혔다. 스가와라도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야마가타는 가장 먼저 세미의 상태를 확인했다. 맥박과 호흡은 다행스럽게도 정상이었고 연구소장의 말마따나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다. 야마가타는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세미의 온몸을 뒤덮고 있는 새빨간 피들을 서둘러 닦아냈다. 더 이상 옷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넝마는 아예 찢어서 벗겨내고, 그 위에 스가와라가 가져온 여벌의 병원복을 걸쳤다. 정신을 완전히 잃었다. 의식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회복력이 인간의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고 하더라도 몸 안에 탄환이 남아있으면 위험할 수 있다.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야마가타는 세미를 등에 들쳐 업었다. 바깥으로 나오자 복도에서는 오이카와와 연구소장이 대치하고 서있었다. 아니, 연구소장은 딱히 세미를 데려가려 한다거나 야마가타의 걸음을 막는다거나 할 의지는 없어보였다. 쓸 만한 데이터는 모두 수집했다 이거다. 야마가타가 으득 이를 갈았다.

 

 

돌아오자마자 바쁘시네요, 오이카와 씨는.”

 

 

연구소장이 빙긋 웃었다. 오이카와는 대놓고 불쾌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씹었다. 고개만 돌려 눈짓으로 얼른 가라고 야마가타에게 말한다. 연구소장도 함께 온 연구원들과 함께 등을 돌렸다.

 

 

다치신 것 같은데, 어서 가서 치료 받으셔야죠.”

 

 

공기 중에 살얼음이 동동 떠다녔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오이카와만 유일하게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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